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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눈물겨움에 대하여
리네트!
낮게 드리워진 하늘이 금세라도 눈이 올 것만 같은 아침,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하늘이 키를 낮추고 가까이 내려오는 날은 목화솜 이불을 덮고 누운 것처럼 적당히 가슴을 짓누르는 공기의 무게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대에게 편지를 써야겠단 생각을 했으면서도 쉽게 펜을 들지 못했던 것은 이렇게 마음이 차분해지길 기다려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너무 깊어져서 차츰 할 말을 잃어가는 사람처럼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아 꽤나 기인 시간동안 방안을 서성여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허비하고서야 수채화로 그린 서정시라는 스티브 행크스(Steve Hanks)의 수채화 한 점 걸어놓고 겨우 편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샌디에고의 해변에 살며 자신이 살고 있는 바닷가의 풍경이나 인물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수채화 화가 행크스가 생각났던 것은 날마다 안부를 묻던 그대의 바다가 내 안에서 출렁이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
한데도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 바다가 아닌 비 내리는 기차역의 풍경을 담은 'Leaving in the rain' 이란 화제(畵題)의 저 그림을 고른 것은 어쩌면 그대에 대한 내 마음의 풍경을 많이 닮은 그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그림에 눈길을 주시기 바랍니다.
기차역엔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멀어지는 기차는 모퉁이를 돌아 풍경 뒤로 사라지려 합니다. 여행가방은 비를 맞고 우산을 받쳐든 소녀는 가방 모퉁이에 걸터 앉은 채 멀어져 가는 기차를 하냥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녀는 지금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싣고가는 인생이란 열차는 필연적으로 적잖은 사랑이란 이름의 간이역을 지나치게 됩니다. 나 역시도 그동안 크고 작은 사랑의 역을 지나오며 때론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남겨지기도 하면서 몇 번의 사랑의 불길 속을 건넜습니다. 뜨거운 불길 속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도자기와는 달리 불에 데인 기억을 지닌 아이처럼 사랑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나는 사랑이 두렵습니다. 아니 좀더 솔직히 얘기한다면 사랑이 두려운 게 아니라 사랑 뒤에 홀로 남겨지는것이 두렵습니다. 만남은 분명 기쁨이지만 그 만남이 함께 데리고 온 이별의 순간과 대면할 용기가 내겐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대가 두려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걸음 다가서면 한 걸음 물러서고, 한 걸음 물러나면 한 걸음 다가가며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려 조바심 치던 나의 속마음을 조금은 헤아리시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냉정해지려 애를 써도 한 번 기울기 시작한 마음의 경사각은 갈수록 가팔라져 시이소오를 타던 마음은 그대에게로만 기울어갑니다. 수없이 손사래쳐도 이미 내 안에 가득차서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그대에 대한 생각은 그칠 줄 모릅니다. 바람으로 와서 나를 흔들고 비가 되어 나를 적시는 그대를, 저녁이면 어둠으로 내리고 새벽이면 안개로 나를 덮쳐오는 그대를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엔 그저 그대를 알게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는데 이젠 자꾸만 욕심이 납니다. 짧은 문자 메시지에도 감동 받고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저녁이면 온밤이 모두 축복이었는데 이제는, 이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대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즐겨 쓰는 향수는 어떤 것인지, 즐겨입는 옷차림과 머플러의 색깔까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대 마음 속에 내가 들어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압니다. 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도 견뎌야 하는 것임을. 내가 아는 시인 중의 한 시인은 '문학은 사람살이의 눈물겨움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지요. 목숨 지닌 것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문학이라면 사랑은 그것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겟습니다. 사랑이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도 같아서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니다아니다 수없이 고개를 저어도 눈을 뜨면 언제나 눈썹 끝에 매달려 있는 사람! 부디 나무라진 마십시오. 아무리 거센 눈보라도 언젠가는 그치게 마련이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도 때가 되면 멈추게 마련입니다. 내 안의 불꽃 스스로 사윌 떄까지 그냥 지켜봐 주십시오.
리네트! 그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언제나처럼 세상의 그늘 한 점 깃들지 않은 환한 얼굴로 가만히 웃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프고 저린 마음은 나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나로 인해 그대가 아파할까봐 나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하던 그때처럼 눈부신 날들이 그대에게 영원히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댓글 6개
안녕하세요? 백승훈 님~! 백승훈 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의 고뇌'를 읽는 느낌이 듭니다. 로테라는 여인에게 쓴 절절한 사랑 편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한켠에 자리 잡은 그림 or 사진은 글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합니다. (그림 선택에 탁월한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차근차근 써 내려가신 글의 모든 의미를 제가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욕심 없고 정직한 사람이어야만 이러한 문장이 나오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좋다는 얘기입니다.^^ 아무쪼록 감성이 풍부한 글 앞으로로 많이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제 마음도 그랬던 적 있었는데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누군가가 저를 좋아하면 안되냐고 사랑하면 안되냐고 했을 때 단번에 거절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도 혼자서만 마음 안에 담아두곤 했는데... 왜냐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이별을 하더라도 혼자서만 하면 되니까..생각하기에 따라 제가 이기적일 수도 있겠죠.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웃기죠. 자신의 마음조차 다 알 수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저도 뭔가가 두려워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생각했으니까요. 사랑한다고 말하고나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랑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제가 좋아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아했었고 막상 제가 좋아했던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늘 인연은 어긋나기만 했던 것 같아요.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은 저에게 온전한 사랑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더랬어요. 아무튼 지금은 마음이 아주 편하네요. 아프더라도 사랑해서 아픈거니까 괜찮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아픔까지도 사랑으로 다 담고 싶은,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제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됩니다. 늘 꿈꾸듯이 살아가는 하루가 즐겁네요. 늘 행복하세요~
영상속의 그림이 마치 사진같아 한참을 봤습니다.. 그림속의 여인은 빗속에서 저 기차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두개의 가방속에 자신의 모든것을 담고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는 여인은 마냥 신이 납니다.. 비가 와서 더 운치가 있고요~~~ 우산밖의 모든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 오고 있습니다.. 이젠 사랑한 사람을 만날 시간도 멀지 않았습니다..## 시인님!! 늘 어깃장을 잘 놓는 제가 억지를 부렸습니다.. 너그러이 봐 주세요~~ 사랑은 늘 반전이 있잖아요..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타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어울리지도 않는 시 한수 읊어봅니다^^
최인구 선생님, 반갑습니다. 너무 과찬의 말씀을 주시면 제가 철이 없어 금세 우쭐해진답니다. 곱게 보아주시니 그저 황송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선생님의 말씀 가슴에 담고 보다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마음의 거울 열심히 닦겠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지만 난 ' 아프니까 사랑이다'라고 사랑을 정의하고 싶습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렵고 상처의 고통이 견딜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사랑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고 아무리 큰 두려움도 이겨내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아마 어느 시인은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 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통해 모든 것을 담아내며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사는 비꽃님이 일견 부럽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세요^^
와우! 아침향기님 대단하십니다. 똑같은 그림을 보고도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니... 아침향기님의 행복한 말씀에 나도 덩달아 행복모드로 전환됩니다. 시는 보너쑤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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