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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이 많은 사람
백승훈 2012. 12. 23. 오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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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2012. 12. 23. 오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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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트!
다시 겨울의 중심으로 들어온 듯 바람끝이 매서워졌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벽난로가 있는 까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미뤄두었던 책을 잡고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게 제 격이지 싶습니다. 책 이야기를 하니 오래 전에 읽은 '신기생뎐'이란 소설이 생각납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기생들의 삶을 오롯이 복원해 화제를 모았던 이현수의 소설 '신기생뎐' 속에 '서랍 많은 사람' 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설의 주무대인 부용각 기생들의 꿈은 하나같이 '서랍 많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용각의 기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랍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따르며 저마다의 생존전략을 짭니다. 그녀들에게 서랍이란 자신이 갖고 싶은 집이나 땅, 아니면 사람들 앞에 자랑스레 내 보일 그 무엇이었습니다.
'서랍이 많은 사람'이란 일본에서 재주 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서랍이 곧 재주를 뜻하는 말인 셈인데 왜 재주 많은 사람을 서랍 많은 사람이라 했을까요? 서랍이란 무언가를 넣어 두는 수납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서랍이 많은 사람은 남들에게 꺼내 놓을 것이 많은 사람이고, 남들에게 내보일 게 많은 사람은 재주꾼일 수 밖에 없겠지요. 요즘 예능 프로를 보면 출연한 연예인들이 개인기를 선 보이는 게 유행입니다. 개인기가 많은 사람은 많은 박수를 받기도 하고 그렇지못한 사람은 뻘쭘해지기도 합니다.
재주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습득 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히트곡을 가진 이미자씨는 가요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어느 프로엔가 나와서 가수는 목소리를 타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50년 동안 고운 목소리를 간직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겸손의 변이었지만 그 말 속엔 가수는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타고남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가수 뿐 아니라 스포츠 선수나 화가, 소설가 등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고 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반면 보통 사람들이 지닌 재주란 학습을 통하여 후천적으로 습득되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에도 어느만큼은 적성이라 표현되는 타고남이 필요하긴 하지만 열심히 갈고 닦는 노력이 있으면 대부분 익힐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타고남이 있더라도 노력하지 않고 익힐 수 있는 재주는 없습니다. 부단히 갈고 닦아야만 옥도 빛나는 보석이 되는 법이니까요. 결국 서랍이 많은 사람이란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린 사람이요, 자신이 타고난 재주를 끊임없이 연마한 사람인 것이겠지요.
'신기생뎐'을 집필하는 동안 작가는 항상 책상 앞에 커다란 기생 그림을 걸어두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 소설 집필에 관한 에피소드를 아는 시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시인은 명성황후에서 조수미가 부른 '나 거거든'이란 노래를 곧잘 불렀는데 어느 자리에선가 그 노래를 듣고는 한밤중에 전화를 하여 작가는 시인에게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엔 여자로서는 짐작키 어려운 사내들만이 아는 야한 이야기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데 그 이야기들은 작가가 문단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난 L시인과 소설가 H에게 술 사주며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이야기라고도 했습니다. 책 한 권이 쓰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따르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서랍을 지녔는가. 내가 서랍 속에서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헐한 서랍을 생각하며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몇 날 남지 않은 2012년.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2개
비꽃
2012. 12. 23. 오후 09:16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봅니다. 현재로선 특별히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어느 날 서랍을 열었을 때 한 가지라도 내보일 수 있는 삶을 그려나가려 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백승훈
2012. 12. 24. 오전 11:38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성찰만이 서랍 많은 사람을 만들어 주는 단 하나의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비꽃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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