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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네
리네트!
어제는 모처럼 대학로에 나가 공연을 보았습니다.
지난 늦가을, 진도 기행에서 만났던 소포리 사람들의 진도 소리 공연이 성균관대 소극장에서 있었습니다. 고향 사람을 만난 듯 진도의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공연을 보는 동안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꾸미지 않은 민낯의 시골 새악씨 같은 날 것의 소리가 주는 울림도 컸지만 천리 먼길 달려와 판을 펼치는 진도 사람들의 열정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던 밤이 었습니다.
지난 밤의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는 이 아침, 남녘에 눈소식을 들으며 그들의 귀로가 부디 편안했길 빌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명처럼 들리는 소나무의 비명소리가 귓전을 맴돕니다.
어느 해 겨울, 눈에 갇혀 설악에서 밤을 지샐 때 어둠 속에서 처연하게 귓전을 울리던 소나무의 비명소리가 이명처럼 살아나고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찢겨진 청솔가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안면도 휴양림의 산책로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소나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뭇사람들과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늘 푸른 빛을 간직하고 있어 예로부터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나무이지만 어느 순간 그 변치 않는 푸른 빛이 욕심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여름내 무성하던 모든 이파리를 내려놓고 겨울을 건너가는데 유독 소나무만 독야청청하다가 눈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를 찢기는 고통을 당하니까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결국 그 욕심이 화가 된다는 것을 가지 찢긴 소나무를 통해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은 비단 소나무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살이에도 그와 비슷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수분지족'(守分知足)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분수를 지켜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는 얘기지요. 자신의 깜냥을 알고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자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니까요.
리네트!
그대도 한 번쯤은 읽어 보셨겠지요?
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던 이시하의 詩. 한번이라도 사랑 때문에 된몸살을 앓았거나 사랑의 상처가 하 깊어서 사랑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꿈꾸어봤음직 한 소망 같은 그 시 말입니다. 사랑의 어원이 사량(思量)이라는데 그 끝없는 헤아림으로 애닳아 하기보다는 한 번쯤은 그냥 있는 대로 놓아두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살고싶을테니까요.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 이 시 하의 '그랬으면 좋겠네' 全文 -
나이 든다고 절로 여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하여 어느 만큼은 강팍해진 마음도 누그러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 몸과 마음의 경계를 좁히다 보면 조금은 더 여유로워져서 서로에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그대가 빨리 늙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6개
'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네'라는 말씀에 잠시 마음 한곳에 두었던 저의 생각이 떠올라 \"허허\" 웃고 갑니다..
몸과 마음의 사이를 좁히는 일, 그 누구를 보더라도 같은 느낌이 드는 일처럼, 살아있음을 만지는 일인 듯하네요. 잠시 머물다가 갑니다. 즐거운 하루!!!
'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네.'이 시를 읽을 때면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쉽게 변하지 않는 말과 행동들은 얼마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고 어쩌면 정말 빨리 늙으면 마음적으로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집착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정말 시간이 해결해줄까 싶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겠죠. 그래서 일찌감치 전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아무리 나이가 들어 늙는다할지라도 마음은 늘 한결같이 지금처럼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마음적으로 여유를 가져본 적은 없었거든요. 늘 바쁘게만 달려온 시간이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면서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요즘이 참 행복합니다. 공연은 저도 너무나 잘 보고 왔어요. 시작 부분과 그리고 이어진 분의 소리, 두 분의 소리에서 왠지 모르게 제 마음이 울컥해졌더랬어요. 가방에서 손수건을 찾다가 손에 집이지가 않아 화장지 하나를 꺼내었는데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자꾸만 찍어내면서 왜 그리도 슬픈지... 그리고 다음부터 이어진 소리들은 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슬픈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전문적으로 소리하시는 분이 아니라하더라도 제 마음에는 충분히 울림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가만 보면 저도 어느 순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젠 정말 그런가 봅니다. 한 편의 영화가,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보면 그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공연을 보며 받은 느낌이 글로 잘 풀어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래 기억될 공연이었고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좋은 공연 볼 수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고운 빛으로 그려보면서 앞으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나가는데 게을리 하지 않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늘 좋은 하루 되셨으면 합니다.
아침향기님이 갈무려두었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날엔 사랑을 이유로 상대를 소유하고 구속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나이 들면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란 것을 차츰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주보기가 아니라 나란히 앉아 한곳으로 시선을 모으며 추억과 시간을 공유하는.... 김봉길님 고맙습니다.
비꽃님,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직접 가져오신 커피맛도 일품이었구요^^ 당장 글이 되지는 않는다 해도 오래 품고 있으면 좋은 글감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근데 이시하의 시처럼 생각하시기엔 너무 빠르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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