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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네

백승훈 2012. 12. 28. 오전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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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트!
어제는 모처럼 대학로에 나가 공연을 보았습니다.
지난 늦가을, 진도 기행에서 만났던 소포리 사람들의 진도 소리 공연이 성균관대 소극장에서 있었습니다. 고향 사람을 만난 듯 진도의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공연을 보는 동안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꾸미지 않은 민낯의 시골 새악씨 같은 날 것의 소리가 주는 울림도 컸지만 천리 먼길 달려와 판을 펼치는 진도 사람들의 열정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던 밤이 었습니다.
지난 밤의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는 이 아침, 남녘에 눈소식을 들으며 그들의 귀로가 부디 편안했길 빌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명처럼 들리는 소나무의 비명소리가 귓전을 맴돕니다.
 어느 해 겨울, 눈에 갇혀  설악에서 밤을 지샐 때 어둠 속에서 처연하게 귓전을 울리던 소나무의 비명소리가 이명처럼 살아나고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찢겨진 청솔가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안면도 휴양림의 산책로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소나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뭇사람들과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늘 푸른 빛을 간직하고 있어 예로부터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나무이지만  어느 순간  그 변치 않는 푸른 빛이 욕심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여름내 무성하던 모든 이파리를 내려놓고 겨울을 건너가는데 유독 소나무만 독야청청하다가 눈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를 찢기는 고통을 당하니까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결국 그 욕심이 화가 된다는 것을 가지 찢긴 소나무를  통해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은 비단 소나무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살이에도 그와 비슷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수분지족'(守分知足)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분수를 지켜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는 얘기지요. 자신의 깜냥을 알고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자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니까요.


리네트!
그대도 한 번쯤은 읽어 보셨겠지요?

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던 이시하의 詩. 한번이라도 사랑 때문에 된몸살을 앓았거나 사랑의 상처가 하 깊어서 사랑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꿈꾸어봤음직 한 소망 같은 그 시 말입니다. 사랑의 어원이 사량(思量)이라는데 그 끝없는 헤아림으로 애닳아 하기보다는 한 번쯤은 그냥 있는 대로 놓아두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살고싶을테니까요.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 이 시 하의 '그랬으면 좋겠네' 全文 -
 

나이 든다고 절로 여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하여 어느 만큼은 강팍해진 마음도 누그러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 몸과 마음의 경계를 좁히다 보면 조금은 더 여유로워져서 서로에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그대가 빨리 늙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6개

아침향기 2012. 12. 28. 오전 11:35

'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네'라는 말씀에 잠시 마음 한곳에 두었던 저의 생각이 떠올라 \"허허\" 웃고 갑니다..

김봉길 2012. 12. 28. 오전 11:38

몸과 마음의 사이를 좁히는 일, 그 누구를 보더라도 같은 느낌이 드는 일처럼, 살아있음을 만지는 일인 듯하네요. 잠시 머물다가 갑니다. 즐거운 하루!!!

비꽃 2012. 12. 28. 오후 03:14

'애인이 빨리 늙었으면 좋겠네.'이 시를 읽을 때면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쉽게 변하지 않는 말과 행동들은 얼마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고 어쩌면 정말 빨리 늙으면 마음적으로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집착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정말 시간이 해결해줄까 싶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겠죠. 그래서 일찌감치 전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아무리 나이가 들어 늙는다할지라도 마음은 늘 한결같이 지금처럼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마음적으로 여유를 가져본 적은 없었거든요. 늘 바쁘게만 달려온 시간이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면서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요즘이 참 행복합니다. 공연은 저도 너무나 잘 보고 왔어요. 시작 부분과 그리고 이어진 분의 소리, 두 분의 소리에서 왠지 모르게 제 마음이 울컥해졌더랬어요. 가방에서 손수건을 찾다가 손에 집이지가 않아 화장지 하나를 꺼내었는데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자꾸만 찍어내면서 왜 그리도 슬픈지... 그리고 다음부터 이어진 소리들은 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슬픈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전문적으로 소리하시는 분이 아니라하더라도 제 마음에는 충분히 울림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가만 보면 저도 어느 순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젠 정말 그런가 봅니다. 한 편의 영화가,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보면 그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공연을 보며 받은 느낌이 글로 잘 풀어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래 기억될 공연이었고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좋은 공연 볼 수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고운 빛으로 그려보면서 앞으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나가는데 게을리 하지 않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늘 좋은 하루 되셨으면 합니다.

백승훈 2012. 12. 29. 오전 10:22

아침향기님이 갈무려두었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백승훈 2012. 12. 29. 오전 10:27

젊은 날엔 사랑을 이유로 상대를 소유하고 구속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나이 들면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란 것을 차츰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주보기가 아니라 나란히 앉아 한곳으로 시선을 모으며 추억과 시간을 공유하는.... 김봉길님 고맙습니다.

백승훈 2012. 12. 29. 오전 10:31

비꽃님,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직접 가져오신 커피맛도 일품이었구요^^ 당장 글이 되지는 않는다 해도 오래 품고 있으면 좋은 글감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근데 이시하의 시처럼 생각하시기엔 너무 빠르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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