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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박성실 2013. 01. 25. 오전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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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그녀가 자살했다. 오래간 연락도 없던 친척 동생이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부고를 알리는 목소리가 울지도 못하고 떨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우주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와 아빠는 매일 같이 싸웠다. 곱상한 얼굴에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가구장이를 하던 아빠는 여자가 끊이지 않았고, 보증을 서더니 가족을 빚더미에 앉혔다.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때릴 때도 가제도구를 집어 던질 때도, 엄마는 그렇게 하면서 버텼다. 결국 그들은 갈라섰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장례식장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낯선 아가씨가 둘, 상주 완장을 찬 젊은이가 하나 있었다. 사람이 없어 친구들한테 상복을 입으라고 했단다. 그리고 그네들, 10년 만에 만난 그녀의 아빠와 엄마가 멀찌감치 마주보고 구푸린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엄마가 나를 보더니 울기 시작한다. 통곡하며 소리를 높인다. 그 맞은편에 앉은 아빠는 조그마해진 몸을 앞뒤로 흔들며, 다 내 잘못이다 나 때문이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울음마저 그친 그들과 마주 앉았다. 빈소를 지킨 적막이 무겁게 마음을 내리 눌렀다.

 
 소식을 들은 날 밤,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침에 읽은 연예인들의 자살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 말미 어김없이 내 놓은 통계,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 OECD 국 중 자살률 1위. 그중의 하나는 내가 아는 그녀. 그 정신으로 살지 제대로 살지 못해 그런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다,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등 떠들어대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질문이 나를 놓지 않았다. 다음날, 검은 옷을 챙겨 입으며 아이와 함께 같이 가겠다는 남편을 만류했다. 혼자 가고 싶었다. 누구하고도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친구들한테 한 상 부탁하고 나를 향해 앉았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오랜만에 만난 언니, 우리 식구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해야지 않겠니, 그녀는 내 손을 꼭 붙들고 딸이 우울증을 겪었노라 이야기했다. 저 인간이 그렇게 바람을 폈어. 이혼하고 십년 만에 봤어. 그런데 작년까지 보증 선 빚 내가 다 갚았어. 그래서였어. 어릴 때부터 그걸 보고 자랐어. 벌써 세 번째야. 두 번이나 살렸는데, 이번에는 살리지 못했어. 내 손을 꼭 잡은 그녀의 뜨거운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식당일로 근근이 살아오던 엄마는 딸이 연락이 닿지 않자 일하다 말고 집으로 내달렸다. 방문은 잠겨 있었다. 열쇠업자를 불러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가 안은 것은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딸의 주검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내가 어떤 삶으로 걸어들어 왔는지 자각하기 힘들었다. 어릴 적 함께 뛰 놀았던 행복감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는데, 세월이라는 놈이 나를 이들과 이렇게 분리시켜 놨을까? 그녀의 아빠는 크고 빛났으며 아이들과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 내 잘못이라며 고개를 조아리는 그 노인네, 조그마진 어깨에 시선이 멎자 나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옷을 모두 벗어 빨래 통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몸을 타고 내린 물이 배수구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갔다. ‘미안하다, 너에게 너의 엄마, 아빠에게 내가 너무 미안해서 찾아갈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여렸어. 그래서 힘들어 했어. 죽기 전에도 우리 엄마 나 없으면 머리 풀고 다닐 거 같은데 하면서 내 걱정을 했어. 우리 딸 불쌍해, 저렇게 예쁜데, 너무 불쌍해.’ 기나긴 메아리처럼 말들이 주변을 떠돌았다. 나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떨쳐내기 힘든 그 무엇과 씨름을 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 빨래 통에 구겨진 검은 옷이 나를 보고 있었다. 구겨진 쪽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그것을 향해 서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검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 옷을 벌려 팔을 껴고 앞섶을 여몄다. 그제야 나는 서른 살 짧은 인생 살다 간 사촌 누이의 인생의 무게 앞에 그녀의 가는 길 복을 빌었다.

댓글 10개

한은총 김문숙 2013. 01. 25. 오후 01:25

저도 몇몇 우울증 환자를 알고 있어 늘 그들이 참 염려 스럽습니다. 가족들은 오히려 그들이 건강하게 돌아가려 할 때 더욱 방해를 하고 나섭니다. 즉 그들듸 배경에는 건강치 못한 가정 배경이 있어 그들의 치유를 매양 방해 하지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치유조차도 훼방 받는 여러가지 피해 양상이 많습니다. 그런것들이 더욱 지치게 하고요 박성실 님 한 말씀 조심스럽게 드립니다. 신앙심으로든 무엇으로든 마음의 치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살의 사건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을 공격하니까요.

미오새 2013. 01. 26. 오전 11:30

*성실님.. 현실도피의 방법으로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고, 가장 잔인한 방법같아서, 입에 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단어였는데...자살. 2012년 세계인들의 관심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집중되었을 때, 영국의 어느 언론사 기자가 강남르포기사에서, 강남은 욕망과 질투, 그리고 고통이 뒤섞인 곳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강남뿐이겠습니까, 인간생존의 모든 현장이 그리 할텐데... 이기심에 사로 잡혀 서로 반목(反目)하는 세상을, 기쁨을 서로 공유하며 슬픔없고 고통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갈등이 없고 고통 없는 세상이 된다면, 이번에는 인간들에게 비극적인 선택을 하도록 꼬드기는 악마들이 자살을 하지 않을까요. 악마들에게 레밍스 증후군이 일어나는 그런 날이 오기를... 하루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서야 하늘길로 애도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에서 비보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하게 됩니다. 빨래통에 처박혀 구겨진 옷보다 더 심하게 구겨진 작가의 마음이 속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박동수 2013. 01. 26. 오후 12:32

슬픔은 항상 우리들의 주위에 도사리고 있지요 에덴의 요람을 떠나는 날 부터....스스로 버리는 귀중한 자기를 자기것으로만 여길 때 일어나는 사탄의 유혹이지요 우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요 다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는 배려가있었다면 가하는자나 당하는자의 마음에는 인내하는 힘이 있었겠지만 자기것으로만 여기는 미약한 오늘의 사람들. 슬픔에 구겨진 작가의 모습이 이 시간도 어디에서 또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슬픔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납니다. 내가 내것이 아니라..............성경 구절이 생각 납니다. 좋은 글 읽어보네요

박성실 2013. 01. 29. 오전 09:55

나는 내것이 아니다. 맞습니다. 필경사 바틀비 뒤에 붙은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존던의 묵상록 일부가 실려있습니다. 자체로서 일체적인 완전함을 갖춘 섬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를 축소시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는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종(弔鐘)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겁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과 공유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내가 내것이 아니듯, 타인의 죽음은 내 생명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조금더 확대시키면 자연도 우리와 생명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생이 필요한 것인데, 저는 이 죽음 앞에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것이 구겨진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하여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던 모든 이들의 가는 길 복을 빌어 보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가 좀 뜸했네요. 벌써 한 달이 가고 있지만, 좋은 해 보내시기 바랍니다.

박성실 2013. 01. 29. 오전 10:19

'슬픔' , 이걸 처음에는 못 느끼겠더군요. 전쟁을 겪은 미로슬라브볼프라는 크로아티아의 신학자가 '배제와 포용'이라는 책에서 포용하기 위해서 첫번째 해야하는 것은 한 발을 타인의 삶에 담그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거리두기와 소속하기라는 말로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포용을 위한 첫 단계라는 것입니다. 상생이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끼리 나누어 편하게 살면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그 다른 사람들이란 나의 어머니고 아버지, 형제들이더란 말이죠. 내가 그들을 대상화하는 대신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경험하는 것이 배려든 상생이든 거창한 말을 이뤄가는 첫 걸음이 될거라는 생각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자살'이라는 말은 무척 부담스러운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성경을 읽었는데, 예수님은 갈등을 피함으로 안위를 추구하시지 않고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다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 삶으로 걸어들어 간다는 것, 회피하고 싶었던 나의 구겨진 모습은 진심을 담은 애도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은 작가의 의도를 해설없이 전달하는 것인데, 제 글을 다시 읽어보니 조절을 못했네요. 그래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고 있습니다. 잘 지내셨죠? 오셔서 함께 마음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성실 2013. 01. 29. 오전 10:48

네 시인님, 맞습니다. 한동안 이 죽음에서 벗어나지지 않더군요. 장례식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그 무거움은 아무리 술잔을 기울이며 떠드는 호상이라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무거움은 장례식장을 돌아서 나오는 저를 이내 쫓아옵니다. 그리고 오래간 저를 놔주지 않는 듯합니다. 옷을 다 벗어버리고 샤워기로 물을 들이붓는다고 해도 떨쳐지지 않는 것이죠. 결국 마음은 그것을 아직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듭니다.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저를 가지고 놀려고 하는구나.. 그녀의 죽음 앞에 제가 애도해야 하는 것, 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망상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은 그 죽음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죽음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영이 영을 알아본다고 하죠, 두려움이 이 관계를 훼방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심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김정흠 2013. 02. 02. 오후 01:41

참 진실하십니다.

박성실 2013. 02. 05. 오전 09:52

사람이 진실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인구 2013. 02. 08. 오전 11:54

성실 님~!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나이가 들수록 상갓집에 가야하는 횟수가 늘고 나도 언젠가는 저 영정사진 속 주인공이 될 거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아름답게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컴컴한 일상에 불쑥 찾아오는 공포의 외로움.. 성실 님~! 인사가 좀 늦었네요.. 가족들과 따뜻한 명절 보내시고 또 반가운 모습으로 봬요..

박성실 2013. 02. 13. 오전 09:40

인구님~ 어찌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오랜만에 인사 나누니 반갑습니다. 일전에 아들 지원이가 '죽는다'가 뭔지 묻더군요. 그래서 할 말을 찾다가 '이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이별하는 것, 그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구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순조롭게 살아간다는 것 안에 죽음이라는 것이 포함된 것이구나 생각이 들더랍니다. 다만, 예상할 수 없다는 것, 이별한다는 것,이 저에게 두려움을 주는 구나 생각이 들었다할까? 그래서 괜시리 아이에게 살을 부비댔습니다. 이것이 생의 맛이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그것은 자꾸만 사라지는 것이더랍니다. 오랜만에 걸어온 말이 무거운 이야기라 죄송합니다. 한 해 건강하시고, 복된 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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