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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러브레터 9
마음 안에 봄을 세운다는 입춘입니다.
창밖의 세상은 비록 흰눈 속에 덮혀 있어도
이제 마음의 문을 열어 봄맞이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난 주말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두물머리 물래길을 걸었습니다.
아직 해빙이 되지 않은 강은 고요한 침묵에 잠겨 있었지만
멀리 강심으로는 잔물결이 일며 윤슬이 반짝였습니다.
강가에 선 버들가지엔 어느덧 연둣빛 안개가 서려 설레였고
어깨 위로 내려앉는 햇살은 따사로왔습니다.
옷섶을 헤집는 바람끝이 제법 매웠지만 봄을 꿈꾸기엔 더없이 좋은 나들이였습니다.
서로 다른 계곡을 달려온 두 강물이
한물결을 이루는 두물머리 강가를 거닐다가
물이 있는 곳이야말로 이별하기 좋은 장소라 했던 연암 박지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두 물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이별을 떠올린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아주 생뚱맞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봄날
당신과 함께 오르던 운길산의 가파른 산길과
수종사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보던 안개에 흐려진 두물머리 풍경과
일주문 옆 올괴불나무의 자잘한 꽃송이들이
바람이 지날 때마다 싸목싸목 풀어놓던 꽃향기까지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내가 이별을 떠올린 내 무의식의 심연에
당신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디 그 뿐인가요?
연꽃방죽에 가득차 흐르던 세미원의 연꽃향기와
달무리 진 여름밤의 달맞이꽃 향기는 또 얼마나 그윽했습니까?
추억을 밟아 걷는 자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던
당신의 말씀이 바람결에 살아나서 돌아오는 길엔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았습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은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오고 있는 중이라던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지금 나를 향해 오고 있을 거란 믿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리움엔 유통기한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편지 속에 적어 보낸 이상의 싯귀가 가슴을 밟고 갑니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 알면서도
나 혼자 꾸준히 사랑하리다.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의 '이런 시' 일부 -
댓글 7개
두물머리의 그림이 이상님의 시와 맞물리면서 가슴에 맺힙니다. 이별이든 사랑이든, 말로 정의를 하려 하면 할 수록 더 꼬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수천가지의 정의와, 경험과 장면들로 구성된 그것들은 어쩌면 그 곳, 그 사람, 그 사건으로 더 잘 설명되는 것인 것만 같아서요. 올려 주시는 러브레터 시리즈에 한 동안 가슴이 뭉근하고는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 이상님의 이런 시를 처음 읽었네요ᆢ
아, 그러시군요. 처음 읽으신다니 전문을 옮겨 놓겠습니다. 즐감하세요.^^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가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 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틑날 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어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는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이상의 '이런 시' 전문 -
박성실님 고맙습니다. 사랑의 정의는 이 세상의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다는 말도 있지요. 제가 적어내는 이야기가 님에게 작은 감흥이라도 드렸다면 제겐 더없는 기쁨이지요. 늘 행복가득한 날 지으시길 빕니다.^^
아무래도 이상 시선님을 한 번 더 뵙고 오면 더 잘 이해 될 것 같습니다 끝맛이 꿀맛인 글 잘 읽고 갑니다.
글을 찾아보려 했는데 아래에 전문이 있어서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쓰는 러브레터' 오늘 다시 읽어보니 지난 날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 새롭기만 합니다. 그래서 좋은 글은 시간을 두고 보아도 좋은가 봅니다. 깊게 느끼려 크게 들이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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