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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백승훈 2013. 02. 21. 오후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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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황지우 '소나무에 대한 예배' - 내 유년의 기억 속의 겨울은 몹시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그 춥고 긴 겨울 속에 잊혀지지 않는 몇 개의 풍경이 있다. 무릎까지 차게 내려 쌓인 눈 위로 달빛이 내려 앉는 밤이면 어김없이 뒷산 소나무엔 부엉이가 밤을 지켜 울었었다. 그 부엉이 소리를 들으며 나와 동생은 목화씨를 빼기 위해 씨아를 돌리곤 했다. 지금이야 화학솜이 많이 나와서 목화솜은 구경하기도 힘들어졌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선 덮고 자는 이불솜 쯤은 직접 목화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을 했다. 가을에 딴 목화를 이불 솜을 틀기 위해 솜틀집으로 가기 전에 목화에서 씨를 바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씨아란 목화씨를 빼는 기구이고 그 일을 일러 씨아질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양 쪽에 달린 싸아의 손잡이를 돌리면 두 개의 참나무로 된 가락이 맞물려 돌아가는 그 사이로 목화를 밀어 넣으면 솜만 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고 씨는 아래로 떨어지게끔 되어 있다. 씨아질을 하다 보면 손잡이를 돌리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 아파오고 목화씨를 발라내는 씨아 소리는 산골 겨울밤의 정적을 깨곤 했다. 우리들이 힘겨워 하는 기색이 보이면 어머니는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거나 텃밭에 묻어 놓은 무우를 꺼내어 깍아 내어 놓곤 하셨다. 씨아는 우리나라 숲을 대표하는 두 종류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몸체는 소나무로, 씨를 발라내는 가락은 참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대패질이나 끌질이 용이한 소나무로 몸체를 만들고 대단한 압착력을 견뎌야 하는 가락만은 야물디 야문 참나무로 만들었다. 간단한 농기구 하나 만드는데에도 각기 다른 나무의 특성을 고려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숲을 이루는 대표적인 나무를 꼽으라면 단연히 소나무와 참나무다. 어느 나무가 더 좋고 나쁘다고 우열을 가리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소나무는 소나무 대로 참나무는 참나무 대로 저마다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는 다를 수 있지만 호불호에 따라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하는 애국가에도 들어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라고 한다.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 같은 분은 세한 삼우라 하여 송(松),죽(竹) 매 (梅)를 꼽았으며 고산 윤선도의 다섯 벗 중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사철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야 말로 선비의 기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나무로 안성맞춤이었기에 성삼문 같은 이는 죽은 뒤에 봉래산 제일봉에 독야청청한 낙락장송이 되겠노라고 했다. 그에 비해 참나무는 적지 않이 홀대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참나무는 연목(軟木)인 소나무에 비해 대팻날도 허락질 않고 못도 받아 들이지 않는 견목(堅木)이면서도 목질의 부식은 소나무보다 훨씬 빨라 애시당초 재목감으론 부적합한 탓이다. 참나무는 기껏해야 숯을 굽거나 땔감으로 쓰이는 게 고작이었다.오죽하면 애교없는 여자를 일러 참나무 장작개비 같다고 하였겠는가. 기차를 타고 영주에서 강릉을 향해 가다보면 봉화를 지나 춘양(春陽)이라는 작은 간이역을 만날 수 있다. 이 한적한 시골에 역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이 지방의 금강송을 실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대처로 실려 나간 소나무는 질이 좋아서 다른 지방의 금강송과 구별하기 위해 따로이 '춘양목'이라 했다. 춘양목은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반가사유상을 만든 바로 그 소나무다. 춘양목을 이렇게 특별하게 여기는 까닭은 몸통 속부분인 심재율이 일반 소나무보다 높고, 수피가 얇으면서도 나무가 터지거나 갈라지는 수축률은 낮다고 한다. 또 굵기에 비해 나이테의 너비가 좁고 일정해서 비뚤어짐이 거의 없으며, 결이 곱고 광택까지 있어 다른 소나무에 비해 이용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면 춘양목은 동해안 울진까지 올라와 있는 곰솔(해송)과 내륙의 적송(육송)이 자연교잡된 종이라고 한다. 예전의 명성과는 달리 요즘은 춘양지방에서도 춘양목을 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일제가 도낏날에 좇겨 소나무들이 모두 산간오지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춘양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산간마을 울진 소광리다. 소광리 소나무숲은 지난 81년 ‘소나무 유전자보존림’ 으로 지정된 이래 250그루의 춘양목이 씨받이나무로 선택돼 꾸준히 후손을 퍼뜨리고 있다. 이 골짜기의 춘양목 숲이 비교적 건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깊은 골짜기여서 사람의 간섭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소나무에 대한 끔찍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그 사랑의 흔적은 바위에 음각해 놓은 황장금표(黃腸禁標)로 남아 있다. 이 금표는 나라에서 질좋은 소나무를 찾아서 보호하고 남벌과 도벌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의 사랑을 받아 온 소나무가 소나무의 에이즈로 불리우는 재선충으로 인해 앞으로 70년 후면 우리나라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솔수염 하늘소를 매개로 번져가는 재선충병은 그 어떤 병해충보다 소나무에 치명적이다. 길이 1mm정도 되는 재선충은 소나무 조직 속에서 급속히 증식하여 수액의 통로를 막고 독소를 분비하는데 일단 감염되고 나면 구할 방도가 없다고 한다. 한때 전국을 휩쓸었던 솔잎 혹파리에 의한 소나무의 고사율이 30% 정도였던 걸 보면 베어 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재선충병은 소나무 에이즈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대만도 소나무를 차나무로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단 베어내어 더 이상의 확산을 막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이 재선충병은 앞으로 2,3년이 고비라고 한다. 솔수염 하늘소의 최대 이동 거리가 3km인데 요즘은 피해지역에서 50km나 떨어진 곳에서도 발생하기도 한다 하니 이는 사람의 개입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온 국민이 팔을 걷어 부치지 않으면소나무 는 우리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의 후손들은 추사의 세한도에 적힌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선 식물도감의 멸종식물에서 소나무를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댓글 3개

보미 2013. 02. 22. 오전 12:42

황지우 시인님의 시를 좋아합니다. 백승훈 시인님이 아니었으면 황지우 시인님을 잊을뻔 했습니다.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백승훈 2013. 02. 23. 오후 08:27

저도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고맙습니다.

박영순 2013. 02. 26. 오전 10:02

산행을 좋아하는 저는 소나무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크답니다. 산행 중, 일행 한분이 한 소나무를 가리키며 이 모습은 \"암,에 걸린거야 ~! 하시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소나무를 보면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며 살피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이제 온 국민이 팔을 걷어 부치지 않으면 소나무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말씀 ~! 절실히 느낍니다. 좋은 글 ,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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