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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7. 새 신을 신고 첫걸음)

박상덕 2012. 07. 07. 오전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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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우주기원론과 창조신화)


- 7. 새 신을 신고 첫걸음 -
이승을 사는 인간들은
신을 믿든 안 믿든 무관심하고
이리 믿든 저리 믿든, 세상의 흐름에 개의치 않는다.
성직자가 되면, 복음을 전파하는 의무를 다하려 있는 힘껏 애쓰고
신 내림을 받은 자는 무당 노릇하려, 있는 기를 다 빼서 할일을 한다.
사람들은 신비주의적인 것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언가에 얽혀들거나 한 곳에 매이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만의 삶밖에도, 보람으로 따지면 훨씬 많은 다른 삶이 있음을 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은데 가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지⑴
모두가 주어진 대로 탈 없이 자신의 삶과 세상을 위해 개성대로 산다.
그러나 개중에는 별일도 생겨, 모두를 한 통속으로 몰아넣는 곳도 있다.
한곳에선 도생(倒生)⑵에서부터 뒤집어쓴 죄인이 되어야 한다.⑶
평생토록 족쇄가 채워진 꽉 막힌 사유로 신음하며 살아야 되는 곳이다.
존재의 시작부터 죄성(罪性)에 깊게 연루된 삶이라니 기막힐 따름이다.
시종간의 생명존속(survive)과 종족보존(reproduce)은 본능이니
하늘의 뜻을 받드는 의무이자 주어진 권리를 성실히 다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후손들은 짊진 운명에 더해져, 끔찍한 멍에를 별도로 져야만 한다.
어쩌다 천형(天刑)이 내려 낙인찍힌 전과자가 되는 모순을 보아야하나.

(낙원에서 순결의 상태에서는 출생이 축복이 되겠지만, 실낙원 이후에는 이승의 죄만 해도 더 할 수 없을 만큼이나 클 터인데, 그 위에 원죄까지 얹혀야 하니, 이는 저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낙원이 아니라 이승에서 출생되었다. 그러니 자손을 잇는 게 아니라 줄줄이 죄인을 낳는 거다. 이처럼 죄인을 끝없이 양산해야하는 화수분 같은 이 상황을 신의 명령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신의 섭리는 인간이 피사육자의 신세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가? 모세는 돌아보기도 싫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월의 백합보다 빛나는 해맑은 아기의 미소를 찾을 길이 없구나.
오! 내 아들 내 딸이 보여주던 천진난만이, 죄악 된 본성의 소유자라니!
무언가 그릇되었다. 이런 덧없고 비참한 이승이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
이 귀한 세상에서 버릴 것이 어디 있다고 함부로 그리 하는가?
만유는 모두가 어머니가 지어낸 '순수한 의미체(意味體)'가 아니던가.
그것을 정녕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천도(天道)는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생사는 정해진 운명이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했다.⑷
이게 천도라면 무엇을 어떻게 조화를 맞추어야 뜻에 따랐다고 할까?
인간의 삶은 누구나 다 같은 것 같아도, 사람마다 존재가치를 다르게 하여
진리성 보다는 필요성에 기반두기에 달라진다. 그러니 족적은 천명에 의해
주어진 존재성이 최대로 채워진 것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 삶은 내 스스로 가꾸며 보람되게 사는 것이 이승의 진실이 된다.
그렇게 자신이 순수하기를 바라며 애를 쓰며 사는 인간은
사는 것이 천차만별이듯이 각자마다 그만한 존재이유를 지니고 태어나
유한의 삶 안에 실망과 환희가 뒤섞인 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인간의 잣대로 굳이, 잴 수가 없기에, 구분해서 말하면
덜 나쁜 것과 덜 좋은 것이 혼돈 속의 질서로 뒤엉켜있으며
덜 나쁜 것은 좋게 되려고 더욱 열심히 하고,
덜 좋은 것은 아주 좋게 바뀌어 전체의 조화를 만들며
주어진 조건에 열심을 다하며 제 삶에 살을 보태고 있다.
지질펀펀한(고르게 편편하다) 곳이라야 눈 씻고 봐도 없는 곳
길 없는 험한 굽잇길을 돌고 돌아야 하는 고달픈 여행길이지만
근심이 도리어 편안케 하는 그 뭣 하나도 빠치면 안 되는 삶의 터고
아무도 앞일을 알 도리가 없으니 오히려 그런 게 살맛을 북돋아주고
바르게 살려고 온 힘을 쏟도록 하는 것도
앞으로 맞닥트릴 미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래서 역리인 것 같으면서도 순리가 되는 것이 섭리의 위대함이다.
그러니 하나 더하기 하나는 꼭 둘이 되어야하는 산술처럼
똑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면, 이는 하나만 아는 미련퉁이다.
이것이 올바른 이승인데, 혼미에 빠진 채 지금껏 잊고 살았다.
운명이 시작의 문을 연후에는
진행에서 결과까지 각자에게 지워진 책임이 된다.
그러니 갈 길이 빤하다는 '예정된 운명론'은 삶의 의욕마저 잃게 만든다.
숭배하는 동물로 불리는 인간은 그런 식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샛길로 빠졌으며, 잘못 그리고 기만적으로
세상을 해석하여 스스로 만든 올무에 갇히는 바보짓을 했다.⑸
그때는 '다수가 하나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진보⑹'라는
신정(神政)질서체제였으니, 개인의 의사나 재주는 불필요 했다.
아무리 출중한 재주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 시대의 도덕적 가치⑺'에 준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남보다 지나치게 돋보일수록 주목의 대상이 될 뿐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억압받는 상태로 지내거나 한 곳에 갇혀 감시를 받으며
타의에 의해 엉뚱한 일에 매달려야 하는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야했다.
착오의 시대엔 오직 신만이 세상의 중심이기에 해석도 그래야했다.
위없다(無上)함은 그 보다 더 위가 없다는 뜻이니
그 말씀이 참 진리임에도, 내 것에만 집착하는 탐욕과
나만이 옳다는 독선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 달라지게 했다.
화산이 솟구치고 대륙이 융기되고 지반이 꺼지는 지이(地異)는
지질학적 구조가 바뀌는 지각변동의 하나이지만,
자연이 하는 일조차도 신이 하는 것으로 여겨야 고개를 끄덕였다.
앞 개천이 넘쳐 한해 농사를 망쳐도 하늘의 뜻이어야 했다.
이유도 모른 채, 뭔가 하늘의 노여움을 산 것으로 알아야 했다.
그것이 숨 막히는 세상살이를 순리대로 푸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그러니 그보다 더한 천재지변은 말할 수 없는 저주여야 했다.
갑자기 나타난 쓰나미가 온 동네를 덮치거나
멀쩡했던 산야에 지진이 몰아쳐 쑥대밭을 만들거나
온 들을 덮을 만한 대홍수가 휘몰아쳐 아까운 생명들이
무더기로 죽어나자빠지는 참담한 일들은 신의 뜻이어야 했다.
당한 사람도 보는 사람도 매한가지로 여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으니 오히려 체념을 도왔다.
그렇다고 해도, 강물이 범람하여 대홍수가 났다고 해서 사탄이
물속 가득히 악의 씨를 심어 놨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그 속에 파묻혀 죽었다고 악에 대한 심판인가?
어느 목사의 막말처럼 일본 동북지역지진이 하늘이 내린 심판인가?
지금까지 수천 수백만 번도 더 넘게 발생한 지질학적 현상들은
모두가 하늘이 내린 심판에 의했던 것인가? 그 말이 맞는가?⑻
소돔과 고모라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고대의 한 시기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레반트로 불리던 일대에
불세례가 비처럼 쏟아졌다고 그것이 악을 징치하는 것일까?⑼
농사에 쓰이는 농업용수라 해서 선한 것이 들어 있지 않듯이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總擔)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대지를 뒤엎는다고 해도, 자연이 스스로 조화와 균형을 맞추려는 작용이며
이는 우주의 거시적 진화에 속하는 지구의 미시적 변화의 하나일 뿐이다.
결코 그 속에다 악을 심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홍수가 난 빗물에 악이 들어 있나 선이 들어 있나 따지는 것이나
섭리에는 이것은 선이라서 되고 저 경우에는 악하니 안 되는 모순이란
애당초부터 가당치 않다. 우주는 오직 공리(公理)를 통하여
우주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맞추어나갈 뿐이다.
오늘날의 인간의 지각은 놀랍도록 진화를 거듭하여
모든 자연법칙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도달하였다.⑽
이제는 지구에서 발생되는 여러 형태의 각가지 변화라 해도
광대한 우주에 포함되고 그 힘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가장 단순한 단계의 진화의 원형을 말하면
화학물질의 산일구조(散逸構造,dissipative structure)일 것이다.
똑같은 진화의 원리가 복잡성과 다양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포함하는 생물계의 개체마다 골고루 적용되듯이
놀랍게도 우주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
이는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의 활동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각 개체들은
진화의 모든 국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생명을 통해 조직되는 싱싱한 새 물질이라 하더라도
아득히 먼 시간과 장소에 우주의 기원을 두고 있다면,
생명의 역학은 당연히 우주의 역학에 조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광대한 우주의 거대한 진화라 하더라도 미분화된 질서나
또는 복잡성이 전개(unfolding)된 역사의 합임을 말한다.
그러니 비록 대 우주의 거시적인 복잡한 변화에 비하면 작디작은
인간세계의 미시적인 진화에 불과한 단순한 변화라 해도
만유에 주어진 부침의 한 과정이며, 운명이라 불렀던 것들이다.
이는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지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며
우주의 공리(公理)에 의해 좌우됨을 뒤집어 말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속에는 우주 전체에 통용되는 질서인 공리에 의한
생성이 있으며 끝내는 소멸이란 필연도 같이 담겨있다.
이는 비록 작은 인류사이지만, 이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우주를 운행하는 보편적인 진리는 인간의 자의(恣意)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쳐 행해지는 파격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진정(眞正)은 언제나 중심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하늘의 힘임을 알게 한다.
지구의 역사를 들추어 이게 사실로 들어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에서 심하게 뒤틀렸거나 휘어졌을 때에도
파국을 막고 올바르게 잡아준 것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공리(公理)에 의해서 인도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쪽에서는 무소불의의 힘으로 모두를 제 것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시대를 주름잡던 정치세력도, 세계를 호령하던 종교집단도 마찬가지였다.
세기마다 세상을 휘어잡았던 그들을 보면 어마어마한 기세로
단숨에 온갖 것을 몽땅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갖은 설득과 강권으로 날을 샐 수밖에 없게 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도대체 그 어마어마한 신의 힘을 빌려
못할 것이 어디에 있었겠나. 그런데 무엇 때문에 안 될까?
이는 세력이 한 곳으로 심하게 기울어지거나 몰리도록 놓아두지 않는
오로지 조화와 질서를 만드는 우주의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때문이다.
그러니 지구상에서 어떤 정치세력이나 종교집단이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동원하고, 아무리 간절히 원했다고 해도
수천 년의 인류역사에서 보듯이 목적대로 이룰 수가 없었던 데에는
우리 인간으론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늘의 힘(天道)이 작용했기에 그렇다.
그것이 뭇사람들의 입에서 습관처럼 말하는 하늘의 뜻이다.
우주론혁명이 3기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간은
우주생성의 메커니즘(機制)을 새롭게 해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천년은 차원이 다른 인간이 위주가 되는 세계로 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결코 신적(神的)이지 않으며,
무기력한 시절과는 전혀 다르게 변모했다. 그동안 인류를 선도하던
종교적 세계관은 전 세기에 종말을 고하였으며 더 이상 앞설 수 없다.
그렇다고 과학이 종교를 대체 했다거나 해석한 것은 아니다.
둘은 상반된 이해가 아닌 상보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자산으로서
서로가 인류를 위해서 바라보고 행할 것에 지킬 선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지동설〉이나 〈진화론〉은
과학이 발견한 위대한 사상이며 불멸의 진리임을 안다.
그러나 나서길 싫어하는 과학은 예전에 해오던 그대로와 다름없이 앞으로도
밑바탕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것을 선용(善用)하는 한은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어떠한 것보다도 값진 것을 인간에게 혜택으로 되돌려줄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이 우주의 깊은 속까지 완벽하게 터득하였다거나
세상의 모든 일을 말끔히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의미냐 하면, 결코 아니다.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런 생각은 우매함도 자만도 아니라 교만이다.
나태와 방종의 시작이다. 근래에 초미의 관심사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쥔 힉스입자(Higgs boson)가 오랫동안 정황만 있었고
미확인으로 증명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애를 태우듯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아는 것도 헤아리는 것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아는 것은 다만 이루어져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⑾

(빅뱅(Bing Bang)으로 불리는 대폭발 후 1초가 지나기 전에 에너지로 충만하였던 우주에 처음으로 물질이 만들어졌으며, 힉스장(Higgs field)을 통하여 질량을 가진 힉스입자(Higgs boson)를 얻게 됨으로서 - 빅뱅이후 10–36 초에서 10–12 초 사이 - 우주는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생명친화적인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칠 수가 있었다. 물질의 실재가 필연의 결과라고해도 우주의 생성은 마술과 같은 과정을 수없이 겪어야만하였다. 만약 이때에 질량이 '0'이었던 입자가 질량을 얻지 못했다면 우주는 복사선만이 난무하는 황량한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반물질(anti-matter)과의 투쟁에서 물질(matter)이 살아남았기에 만유의 미래를 향한 우주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된 것이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보다보면 우주를 생성해놓은 자연법칙은 어떤 요술이나 마술보다도 신비롭다. 이 모든 것이 없음에서 있음이 되는 과정이며, 계기와 시간차와 순서와 농도가 단순히 '되어라' 하는 말씀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전능한 의미로서의 신 존재증명의 부정은 임마누엘 칸트(I. Kant, AD 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K.d.r.V.)/A567,B595-A704,B732》을 참조)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디로 가야할지, 그 방향만큼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제는 〈지동설〉이나 〈진화론〉이나 있는 그대로 보아야한다.
인간 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출발점이자 도약대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라지고 생기기를 반복했지만, 과학은 역사 이래 꾸준했다.
확언하건데, 이제는 인간의 생명과 의식현상은
우주에너지의 기원과 운명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이나
과학적인 관점으로 대하는 하늘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⑿
이는 과거 한 때의 종속을 비웃을 만큼 큰 능력을 소유했음을 말한다.
'불행 속에 있으면서 행복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큼
쓰라린 일은 없다.⒀'는 어리석음을 두 번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과학이 선도하는 한은 인류의 미래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 ⑴ 《周易》「계사전하(繫辭傳下)」 '天下一致而百慮, 同歸而殊塗.(천하 사람들은 그 도달하려고 하는 이치는 하나인데 그 생각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며,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은데 가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 ⑵ 《대관다론(大觀茶論)》「서(序)」, '嘗謂首地倒生, 所以供人求者, 其類不一.(일찍이 땅에 머리하고 도생하며, 사람의 요구에 제공되는 것은,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일렀다.)'
논자 주 : 도생(倒生) : 생명탄생의 경이로움으로 뱃속에 생겨나 점잖게(?) 땅으로 머리하고 부러울 것 없이 편안하게 있을 때이다. 사람은 본래 어머니 뱃속에서는 거꾸로 있기 때문에 도생이라 하였고, 세상에 태어나서는 곳곳하고 반듯하게 일어서서 살기에 수생(竪生)이라 하며, 죽어서는 땅속에 누우니 횡생(橫生)이라 일컫는다. 竪=從
* ⑶ 「시편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Behold, I was shapen in iniquity; and in sin did my mother conceive me.)'
* ⑷ 《論語》「顔淵篇」, '死生有命, 富貴在天.'
* ⑸ 중세의 교부(敎父,Church Father)들에게 그리스 사유방식에 영향을 받은 이원론은 실재(Reality)를 확립하는 좋은 근거가 되었으며, 이원론적 세계관은 신학의 토대를 세우는 굳건한 틀이 되었다. 그러나 반문이나 비판의 대상에서 초월이라는 극단까지 치닫는 어리석음을 낳는 결과까지 초래하여 자신들도 그것에 얽매이는 꼴이 되었다. 유럽의 중세를 어찌하여 '잃어버린 시대'라고 하는지를 말해준다. 본래 자연적으로 주어진 사물의 고유한 본성을 완전히 발휘하여 자기의 존재의미를 충족시키는 것을 선(善)으로 보는 것이 그리스 철학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시대인 중세에서의 선(善)은 자연적 본성의 발휘라는 인간중심이 배제된, 오로지 전능한 신의 의지의 발현으로 왜곡시킴으로서 인간의지는 무시되고 신에 의해, 엄밀히 말하면 신의 이름으로, 받들려지는 신이 아니라, 통제하는 신으로 바뀌었다. 신의 이름이 곧 선이었으며, 위임을 받은 교회만이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공언했다. 따라서 그 시대는 이원론의 실재만이 존재하는 틀에 꽉 막힌, 모두가 불행하게 되는 시대로 변질되어야하는 역사의 필연을 겪어야했다.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탐욕이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 ⑹ 니체 著/김정현 譯,《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제2논문: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들/#12
* ⑺ 2부의 註1 참조
* ⑻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산(Mount Pinatubo)의 대규모 화산폭발은 이듬해 지구기온을 0.5도 떨어뜨렸다. 당시의 분출량은 25㎦(250억㎥)였다. 화산분출량이 1000㎦ 이상인, 다시 말해 피나투보 화산 40개가 동시에 터지는 규모의 화산을 슈퍼화산(Supervolcano)이라고 부른다. 지난 1만 년 동안 이런 규모의 화산분출은 없었다. 슈퍼화산은 드물게 나타나지만 한번 폭발하면 지구 차원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낸다. 약 7만 4천 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아마도 인류가 들었을 가장 큰 폭발음과 함께 토바 호(Lake Toba) 화산이 분출했다. 분출량은 2800㎦로 1980년 폭발한 세인트 헬렌스 산(Mount St. Helens) 화산의 1만 배였다. 2500㎞ 떨어진 인도양 해저에 화산재가 35㎝ 깊이로 쌓였다. 먼지가 해를 가려 지구기온이 몇 년 동안 5도쯤 떨어졌다. 생물 멸종사태가 왔고 인류의 60%가 이때 사망했다. 그 바람에 인류는 멸종 직전에 몰렸고 유전적 다양성이 뚝 떨어졌다. 그 밖의 슈퍼화산으로는 64만 년 전 분화한 미국 옐로스톤 산(Mount Yellowstone)의 칼데라(caldera=분화구 모양의 함몰지역), 26만 5천 년 전 뉴질랜드 북섬의 타우포 호(Lake Taupo) 분화 등이 있다. 2억 5천만 년 전 시베리아 용암대지를 이룬 거대한 화산활동의 분출량은 무려 100만~400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질학적 현상이지 신의 심판이 아니다.
* ⑼ 천문학자인 앨런 본드(Alan bond)와 마크 햄쎌(Mark hampsell)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 중에 하나였던 니네베(Nineveh)의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손바닥만 한 '작은 원판'을 주목하게 된다. 수메르어(Sumerian language)인 쐐기문자(cuneiform)로 점토판에 천제의 그림이 새겨진 '평면천체도'를 접하게 된 것이다. 점토판의 상단에는 유성이 지나간 흔적을 그린 듯 좌우로 선을 긋고, 밑에다 '밝은 물체가 빠르게 지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에 하늘을 관측하던 신관(神官)들이 유성이나 운석을 발견하고 기록한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 내용을 연구하다가 그것이 고대중동지방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의 천체 상항을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재배열하고, 관련 자료들을 연구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고대 수메르의 신관들이 본 것은 지구에 진입한 운석으로 '페가수스자리(Pegasus=Peg.)'에서 '물고기자리(Pisces=Psc.)'로 이동한 흔적을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다. 궤도에서 이탈하여 우주공간을 배회하던 아톤계열의 소행성 - 논자 주 : 아텐계열 소행성(Aten asteroids)은 지구 근접 소행성으로 발견된 첫 소행성 2062 아텐(Aten)의 이름을 따서 지여졌다. 1976년 1월 7일 엘리너 에프 헬린(Eleanor F. Helin)에 의해 발견되었다. 소행성의 궤도는 장반경이 1AU(Astronomical Unit) 이하이며, 매우 이심율(離心率, eccentricity)이 커서 아텐 궤도는 완전이 지구 궤도 내에 포함될 필요가 없다. 1천문단위는 지구와 태양의 평균거리를 1로 하는 거리의 단위. 일반적으로는 천문학적 목적을 위해 쓰이는 단위를 말하지만, 보통은 태양과 지구의 평균거리를 의미한다. 1AU는 149,597,870km이다. 빛이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 약 8분 17초(8.3광분) 걸린다. 천문단위거리 또는 태양거리라고도 한다. - 하나가 지구중력에 이끌려 지구로 진입하였다. 신관들이 하늘에서 유성을 관측한 것이 바로 이때였을 것이다. 완만한 기울기로 돌진하던 운석은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오츠 아스추지역의 퀘펠계곡의 뾰쪽한 산봉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중해의 북아프리카 근해까지 날아가던 운석은 그 여파로 수백 미터 상공에서 그대로 공중 폭발했다.
얼음의 핵에서 추출한 잔재의 분석과 그 외의 여러 근거를 종합하여 얻은 결론에 의하면, 소행성의 크기는 대략 1.25Km 정도이고, 폭발 당시의 위력은 10,000 메가톤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 히로시마 원폭 12,000톤 - 불기둥은 폭발하며 수 킬로에서 수십 킬로까지 상승하였다가 레반트(Levant,그리스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동지중해연안지역)에서 시나이지역까지 5억 톤이 넘는 불덩이를 쏟아냈을 것으로 추산했다. 폭발현장에서 2,400Km나 멀리 떨어진 사해(死海)지역을 포함하여 그 너머까지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음은 불문가지다. 고모라에서 아드마, 수보임, 소돔까지는 모두 성경의 표현대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창 19:24)' 재만 남았을 것이다. 사해를 중심으로 한 불세례는 그렇게 내렸다.』
* ⑽ 찰스 다윈의 고백처럼,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인류가 아직도 여전히 그 육체의 틀 안에 지울 수 없는 열등한 기원에 대한 낙인이 찍혀있음을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①'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인간의 능력이 제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그 옛날에 '사람화 된 유인원'이 조상이었거나 - 유인원의 직립보행은 1700만년 전부터였으며,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약 250∼300만 년 전에 출현하였다.② - 업보(業報,Karma)에 갇힌 피조의 세계에서 피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을 양친으로 가졌었으며, - 이는 아담으로부터 이니 BC 4114년으로 약 6천 년 전이다. - 그 이후에 진화에 힘입어 오늘에 이르렀음을 인정해야 한다. 애초의 '인간조상'이 현대인과 동일한 지적수준을 갖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인간처럼 되기까지에는 습관에 의해서 정제되고 학습에 의해 강화되는 과정 속에서 재생산되고, 보다 발전된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에 전달된 진화의 산물이며, 이는 앞으로 100년 후의 세계가 오늘보다 더한 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추측이 틀리지 않음과 같다.③
- ① 찰스 다윈, 1871,《인류의 유래》
- ② 에르베르 토마(Herbert Thomas) 著/김양미 譯, 《인류의 기원》
- ③ 찰스 다윈 著/송철용 譯, 2009, 《종의 기원》/제5장 변이의 법칙/총괄편
* ⑾ 《荀子》「天論」, '皆知其所以成 莫知其無形(사람이 아는 것은 다만 이루어져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하며 그 보이지 않는 무궁한 세계는 알 수 없다)'
* ⑿ 우주의 거시적 진화는 미분화된 질서와 복잡성이 전개되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구에서 벌어지는 한 개체의 미시적인 작은 변화라도 우주적 거시변화에 속한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주에너지의 기원과 운명이 한 개체의 생명 및 의식 현상과 분리되지 않는다.①'고 하여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생명 있는 것들에 주어진 진화는 처음의 생성(生成)에서부터 시작되어 발전과 소멸(消滅)이란 과정을 거친 후에 새로운 탄생이란 반복되는 순환의 질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하나가 지구에서의 생명탄생이고 진화하는 우주의 한 부분이다.
40억 년 전 처음으로 지구상에 생물이 출현하였다. 이후 지구상의 생물은 진화의 원리에 의하여 보다 높은 복합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진화 조건들을 언제나 조성해 왔다. 이는 생물이 '수평 및 수직 벡터에 의한 유전정보의 전달 메커니즘을 갖추게 됨으로서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변화에 대하여 보다 향상된 적응력을 갖추게 되었다.②' 생물이 생태계의 형성에 이바지하면서 동시에 뒤따라올 세대들의 유전자들에게 영향을 줄 자연선택의 유형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귀한 보물인 좋은 유전자 흐름(gene flow)을 후대에 넘겨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인류는 진화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하나의 통일체로 작용하는 사회계와 문화계가 지니고 있는 (생태학적) 요동들과 자발적 자기 갱신적구조화의 자기 강화 메커니즘까지 갖추는 놀라운 능력까지 지녔다.③' 인간만이 가진 문화체계는 다른 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지적진화라는 유리한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오늘날과 같은 뛰어난 지적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은 진화에 대한 인간의 탁월한 해석과 적응력 덕분이다.
- ① 프리먼 다이슨(Freeman J. Dyson), 《우주속의 에너지(Energy in the Universe)》
- ② 에리히 얀치(Erich Jantsch) 著/홍동선 譯, 1995,《자기 조직하는 우주(The Self-Organizing Universe)》/제2부/#8 사회 생물학과 생태학 : 생물과 환경
- ③ 상게서/제5부/#15 진화-혁명/양자 도약에서 '미끄럼' 진화로?
* ⒀ 《신곡》「지옥편 5곡 제 2옥」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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