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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저녁산책

김봉길 2015. 03. 03. 오후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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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즐거움이 깨지는 소린 줄 알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흐릿한 빗방울.

언제라도 눈뜨면, 떠오르는 그대 눈물 같은 비.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릴까요?

계속 눈물을 닦는 척 뒤돌아 서있을까요? 

시간이 더욱 흐려져 가요.

아마도 그대도 고개 숙였으리라 느껴져요.

비 때문이라며 입술 적시는 소리가 점점 커지네요.

오래된 즐거움,

맞아요,

이젠, 여긴 어디에도 없을 듯하여 고개 숙여 걸어요.


느릿느릿 찬 숨결들이 목덜미를 휘돌아 흐르네요.

두 손 꼭 목을 감싸 쥐어봅니다.

처음부터 어디에 살았다는 것이 잘못인가요.

꼭 모두 목에 에돌아 파고드니 움츠려 걸을 수밖에요.

우리 모두

옳으니 틀렸느니

왼쪽이며 오른쪽으로 비틀거리기만 하라 합니다.

하늘 아래 틀린 건 하나도 없는데도 말이죠.

숨이 막혀요.

그 하늘 구름 턱밑을 눈 치켜 보노라니

숨이 턱 막혀 와요.


​쓰러질 듯 땅에 가까이 얼굴 대고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땅과 뺨, 잠깐이지만, 그저 오래된 것처럼 느껴져요.

내 이름도 아니고 헤어짐도 아니고 슬픔 더욱 아닙니다.

달라진 것 없어 울어 예는 비들,

옷자락마다 튕겨져 나오는 시간들뿐이네요.

어찌 할지요.

내게 묻은 시간이란 모두 땅에 떨어진다는 걸,

언제까지 쳐다봐야 할지요.


잠시, 하늘가 보고 걷어요.

아, 사람들이 나처럼 다가와요.

누구라 알 것 없어 나 먼저 웃어요.

그래요, 다가오는 사람들마다 나처럼 웃었으면 해요.

웃을수록, 비 타고 오는 사람마다 눈 크게 뜨네요.

물론 발자국 소리마다 가슴 꾹꾹 누르는 사람일 겁니다.

이건 겨울비 소리라고 곁을 스치는 사람마다 그래요.

뺨에 이마에 코에 어깨에 부딪치는 이 빗소리,

뭐, 나를 위해 웃는 하늘같은 그대 소리기도 해요.

하하, 먼저 웃는 이유죠, 그대보다 더 크게.


스치는 비 그림자마다 그대인가 하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

빗방울 방울마다 손가락을 걸어보는 것이지요.

서로 품에 안아 사라질 날을 손꼽아 보려고요.

태어나 꼭 한번은 이루어질 것이라며,

억지라도 하늘을 보며, 두 손 훨훨 흔들어 보는 겁니다.

지금이 마지막 흔들어 보는 것이라며 말입니다.

그래요, 가도 가도 빗소리만 들리네요.

혼자 흔드는 손은 보이지도 소리도 나지 않네요.


아직 밤보다 검은 것들이 비 사이사이를 돌아다녀요.

이리저리 힘들어 부딪히다 소리들을 내네요.

아, 이제 시원하다고.

제 시간들이 드디어 멈췄다고.

고맙죠,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오니.

검은 것들을 무어라 부를까요.

슬픔이라든지 아픔라고 하면 안 돼요.

차라리 그냥 나라든가 그대라든가 하는 것이 나아요.


눈 감고 땅을 또 착 밟습니다.

착착 튀기는 흙물이 발에 바지에 옷에 척척 안겨요.

더 세게 밟고 차고 튀겨 봅니다.

하하, 알고 계셨나 봐요.

그래요, 차라리 발가벗고 싶은 걸 어이 아셨나요.

그대 겨울로 듬뿍 몸을 씻고 싶어요.

어찌어찌 살아 있는 모두는 저만 깨끗해지고 싶어 하죠.

씻을수록 더 깨끗해지고 싶고,

사랑할수록 더 싱싱해지고 싶고,

그래서 그대 안아 진흙 속을

마음껏 뒹굴고 싶은 것을 나무라지 마세요.

함께 씻어 우리 함께 새롭다 꿈속이다 외치고 싶어요.

그대 알고 계셨죠?

이럴 땐, 홀로 태어나는 새로움도

숨결에 멈추었다가 사라지고야 마는 것을.

이렇듯,

착착 땅을 밟고 밟는 즐거움이란,

그의 주머니에도,

또 내 가슴에도 있답니다.


이제 점점 빗방울이 산뜻해져요.

방울마다 몸에 닿을 땐 더 하얘지길 바래요.

이 다음, 그 다음을 기다리는 눈빛처럼 하얘지길요.

어쩌면 눈빛 그 빛도 없어지는 더 맑은 즐거움이길 바라죠.

갓난 아이 첫 웃음보다 더 떨리길 바라는 거죠 물론.

다시 겨울이 찾아오면,

그래서 옷깃에 잠깐 찬비가 이렇게 내리면,

내 가슴 이마만한 빗방울들이 그대에게도 내리길 바래요.

가슴가슴 산과 하늘과 같아지길 바래요.

 

겨울비, 그대 또 가는군요.

고마워요.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그대입니다.

즐거운 그대 겨울비와의 짧은 지나침,

고마워요.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그대처럼 지나가듯,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워요.

댓글 1개

문희 2015. 03. 06. 오전 12:01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받으며 빗 속을 걷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차가운 겨울비와 두꺼운 털옷 속의 피부가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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