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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윤경관 2016. 02. 06. 오후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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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윤경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화선지와

한번도 그림을 그려보지 못한 붓이 만났다

외로운 둘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여백에 채워지길

외로움에 지친 화선지

누군가를 위해 마음껏

그림을 그려주고 싶은 기다림에 지친 붓

 

둘의 운명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둘은 술을 좋아하여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취하도록 마신 뒤

화선지의 율동에 춤추듯이

움직이며 입으로 먹물을 뿌리고

손과 발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색적인 화풍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화선지에 산수화 한폭이 그려졌다

우뚝 솟은 흑산도가 태어난 순간이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망쳐 놓았냐고

화선지가 항의 했다

내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닌데

내가 꿈꾸는 게 이게 아닌데

돌이킬 수 없는 만남의 흔적

붓이 화선지를 향해 뚱딴지같이 중얼거렸다

기다려 보면 알거야

화선지는 무슨 소리냐고 물었지만

내가 그린 그림을 이야기 하면

무언가 좋지 않을 것 같아

붓은 입을 다물고 시간은 흘러갔다

 

신기하게도 바위에선 풍란이 자라고 꽃이 핀다

붉은 동백꽃은 동박새를 안고 있다

아리따운 인어공주를 따라 어린왕자도 이사 왔다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어울려

피부 깊숙이 애무하며 속삭인다,

바다 속으로 섬 속에서 섬을 걷다가

야생의 에너지가 저절로 노래가된다

해무가 짙게 깔려 바다인지 하늘인지

저 끝 어디선가 돛단배 오고 있다

무아의 황홀로 빠진다,

 

바람이 화선지에게 귓속말로 흑산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의 작품이야

화선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붓에게 내가 잘못했어,

붓은 아니야

우리는 본래 하나야

하나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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