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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새로운인생) 11편

김병국 2016. 02. 25. 오후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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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생글거리며 말했다. \"그래 어서 말해봐.\" 수경인 한발 다가서며 신이 났다. 오랜만에 정인의 얼굴에서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빨리 말해, 주연이 아빠 들어오시기 전에, 또 술 마시고 들어올라, 주연이 아빠는 술만 마시면 왜 너를 때리고 그러니?\" \"그러지 않아도 너무 공포스러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걱정이 많아.\" “너 그 동안 공장에서 번 돈이 있는데 그만 이혼하는 게 어때?” “이혼도 안 해주고 매일 술값을 내놓으라고 때리는 남편이지만 아버지 치료도 해야 하고 주연이 시집 갈 때 까지만 참아 보려고 해” 정인은 남편과의 관계가 항시 불안했지만 딸의 장래를 생각하고 참고 있었다. '띵 똥' 초인종소리에 정인은 놀란 듯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술 냄새를 화끈 풍기며 들어온 경철은 옆에 있는 수경을 힐끗 쳐다보고 \"넌 누구야?.\" 하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지르고는 비틀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상하리만치 얌전해진 경철은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며 술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일 보자, 동창회 갈 거지?\" 수경인 못내 아쉬운지 눈을 '찡끗' 하며 나갔다. \"그래 잘 가.\" 정인은 술에 취한 남편의 잠자리를 봐주고는 거실로 나와 T V 를 켰다. 명화 극장에서 남녀의 사랑하는 장면이 나오자 정인은 볼륨을 낮추고 거실의 불도 꺼 버렸다. 남편이 잠들 때까지 그녀는 뜨개질을 하며 그렇게 보지도 않는 텔레비젼을 켜 놓은 채 눈을 감았다. 안방에서 술에 쩔은 남편의 무호흡증상에 코가지 고는 소리가 정인을 한없이 슬프게 만들고 있었다. 비록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고 같이 살고 있는 이상 그는 엄연한 남편임에 틀림없는데도, 왜 남편에겐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일까? 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녀는 거실 소파에서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준석도 어제 밤잠을 설쳤지만 아침엔 평상시와 같이 일어났다. 매일 일과로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팔 굽혀 펴기와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을 각 100 회씩 하는 것이다. 오늘 그는 같은 운동에 무릎 올려 뛰기를 하나 더 추가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상쾌해져 아침 식사도 잘하고 환자와 좀 더 적극적으로 대하게 된다. 몇 일전부터 한의대 교수로 있는 영식이 선배가 소개한 갓 졸업하여 한의사가 된 신출래기 를 출근시키기 위해서 준석은 조금 늦게 출근을 했다. 오래 전부터 환자가 늘기 시작해서 부족 되는 일손을 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준석은 언젠가부터 영식이 선배와 같이 반위(反胃)에 대해 연구해오던 것을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준석은 선배와 동료 때론 후배에게까지 암과 탈모에 관한 정보라면 무엇이든 수집하여 지금은 제법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체계적이고 임상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잘생긴 젊은 한의사가 왔다. 새로 온 그는 침놓는 것이 좀 부족 할 뿐 진맥과 처방은 그런 대로 잘해냈다. 침이란 급소가 아니면 그리 위험하진 않지만 자칫 잘못 놓으면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알려주며 오랜 시간 시간을 두고 습득해야 비로서 환자에게 시침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준석은 오늘부터 잘해보라며 같이 있던 조수인 박 선생과 두 간호사를 소개했다. “미스 최와 미스 권은 새로 오신 선생을 보조해 주세요. ” 70후반인 원장은 힘든 목소리로 소개를 마치고 퇴근을 하셨다. 모든 일은 준석이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새로온 의사를 면접 하는 날이라 불편한 몸인데도 원장님이 직접 나오셨다. 새로 온 의사가 제법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준석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제 그는 암에 대해 연구를 하고 만들어 오던 약재 개발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다음날 오후 3 시쯤 정인씨 에게 전화가 왔다. 진료를 끝내는 시간에 한의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화가 안 왔을 땐 잘 몰랐지만 막상 약속을 하고 나니 그녀가 무척 보고 싶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 약속 장소로 나갔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웬일일까? 아마 차가 막혀서 그럴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일분 일분이 긴장 됐다. 그렇게 기다린 지 벌써 30분...... 순간 그는 불길한 생각을 해 본다. 혹,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또 30 분이 지났다. 준석은 입술이 바짝 바짝 마르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쏘일까 했으나 그는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은 그녀가 들어올 문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몸은 굳어져 있었다. 그가 석잔 째 시킨 차를 막 마시려 할 때, 화들짝 문이 열리며 여대생 몇 명이 들어섰다. 그녀들 바로 뒤를 따라 들어온 한 여인?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정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준석은 너무나 반가워 벌떡 일어나 두 손을 흔들었다. 아 ! 그런데 정인은 오른쪽 옷소매를 걷어 부치고 팔꿈치 부분에 흰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니! 다치셨어요?\" 준석은 놀라며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걱정하는 준석을 보며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저는 괜찮아요. 준석씨가 가신 줄 알고 걱정했어요.\" 정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다친 데 좀 봐요. 어디, 손을 좀 들어봐요.\" 그녀의 움직이는 팔을 보니 그리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빨리 오려고 서둘다 넘어 졌어요.\" 그녀는 찰과상이라 괜찮다고 했지만 옆에서 본 그녀의 얼굴은 매우 창백해 보여 준석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다른 곳으로 갑시다.\" 그들은 조용한 식당으로 가서 붕대를 풀어 보았다. 시멘트 바닥에 팔꿈치의 다친 부분이 생각 보다 심한 상태였으며 손톱자국 같은 것도 보였다. 그가 상처 자국을 살펴보려고 하자 그녀는 붕대감은 팔을 뒤로 숨겨버렸다. \"많이 아프겠어요. 쓰라리죠?\" \"아니 괜찮아요\" 정인은 남편경철이가 밀어서 생긴 상처를 그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정인은 미소를 지었지만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준석은 밖으로 나가 찰과상에 아주 잘 듣는 약을 사서 꽁꽁 언 손으로 그녀에게 발라주었다. 그녀는 약을 바를 때 쓰라린 듯 찡그렸지만 금방 환하게 웃었다. 식사 때 그녀가 손을 잘 들지 못해서 그가 반찬을 먹여 주었다. \"매일 이렇게 아팠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않아도 제가 그렇게 해 드릴 게요. 말이 씨가 돼요. 앞으론 절대로 그런 말하지 말아요.\" 준석은 식사를 하고 드라이브도 할 겸 강남에 있는 그녀의 집 근처까지 데려다 주었다. 정인은 그 후 며칠을 한의원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라고 해야 기껏 약을 발라주는 정도였지만 그녀는 항시 퇴근 무렵에 그에게 왔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히 데이트도 겸하게 되었다. 정인에게는 준석을 만나는 것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아버지를 모시고 준석의 한의원을 찾았다. \"아니, 어떻게 여기 까지...\" 그녀 아버지의 돌연한 방문에 준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찰 좀 자세히 해 주세요.\" 그녀는 정신이 없어 보이는 멍한 상태의 아버지를 의자에 앉혔다. 진맥을 한 준석은 환자를 어린아이 다루듯 하며 손을 잡은 채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나쁘신 것 같진 않아요.\" \"침을 맞아야 하나요? 아버지는 말씀도 잘 못하세요. 정리하실 것도 많으신데 그걸 기억 못하세요.\" \"네 에\" \"기억을 해 내실 수 있을까요? 말문이라도 트였으면 좋겠어요.\" \"글쎄요. 치료를 해 봐야 알겠어요. 한번 해 봅시다.\" \"잘 부탁 드릴게요\" 간호사는 그녀의 아버님을 침방에 눕혔다. 준석이 따라 들어와 침 자리를 잡고 있으려니 그녀 아버님은 준석의 손을 잡았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말문이 터지지 않아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다. \"조금만 참으세요.\" 그녀 아버님은 그의 손을 놓고 편안한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준석은 염천(厭泉), 상염천(上厭泉), 통리(通里), 천돌(天突), 증음(增音) 그리고 아문(亞門) 과 풍부(風府) 조해(照海) 에 그리고 그만이 알고 있는 혈에 마지막 제침(銀針)을 꽂았다. 20분 동안 유침(有針) 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잠시 나와 그녀의 팔에 약을 발라주었다. “이젠 다 낫어요. 흉도지지 않고.” 그녀의 팔에 흉이 생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흉은 생기지 않았다. 침방에서 인기척이 나서 준석이 들어가 보니 그녀 아버님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그녀를 찾고 있었다. \"얘... 정 인 아!\" 준석은 그녀에게 아버님한데 들어가 보라고 했다. 정인이 들어서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딸의 손을 잡고 무엇인가 말을 하셨다. 잠시 후 정인은 상기된 모습으로 나와 준석의 앞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말문이 열렸어요. 너무 너무 좋아하세요. 정말 감사 합니다.\" 정인은 준석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침을 빼면 다시 말을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상심 마시고 당분간 치료를 해 봅시다.\" \"네, 그럴 게요. 매일 매일 올게요.\" 정인은 밝게 웃으며 신이 나서 말했다. \"매일은 환자에게 무리가 될 수 있어요. 삼일에 한 번씩만 모시고 오세요.\" \"예, 알았습니다.\" 준석이 신력탕(腎瀝湯)을 조제하는 동안 그녀는 대기실에서 잠시 준석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한적한 눈길에서 준석을 만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절대자가 자기 부녀를 위해 준석을 보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준 하나님에게 무조건 고마웠다. 다음 날 정인이 시장엘 가는데 남편 경철이가 같이 가자고 따라 나섰다. 그녀를 따라만 다니던 경철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들고 있던 물건들을 내동댕이치곤 정인을 방안으로 끌어 드렸다. 경철은 정인을 방에 가둔 채 죄인 다루듯 취조를 하고 있었다. 왜, 남자가 파는 곳에서 반찬거리를 사느냐는 것이다. 그 옆에 여자가 파는 곳도 있는데, 웃음 짓는 폼이 보통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놈 언제부터 알았어, 어서 말해.\" 경철은 정인을 툭 툭 치며 대답을 받아 내려 했다. 정인은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누굴 알아요. 제발 생사람 좀 잡지 말아요.\" 정인은 언젠가도 차가 고장나 버스를 타고 친정에 다녀 온 일이 있었는데 마중 나와 있던 경철이는 왜 남자 옆에 앉았느냐고 다그쳐서 혼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요즈음은 그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경철은 한번 시작하면 밤잠을 자지 않고 문초를 하는 버릇이 있어, 정인은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서글펐다. 경철인 술병채 나발을 불며 그런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이틀이 멀다 하고 정인을 다그쳤다. 오늘도 술을 마신 경철은 의례 거쳐야 하는 행사처럼 정인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증세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병원에 가서 치료를 좀 받아 보자는 그녀의 권유에 경철인 오히려 자신을 환자취급 한다며 그녀를 더욱더 몰아 세웠다. 마침 수경이가 지나는 길에 들렸다가 그들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친구가 있던말던 술에 취한 경철은 정인을 다그치고 있었다. 정인은 친구 앞에서 무시당하는 모욕감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정인은 도망치듯 뛰쳐나와 자신도 모르게 준석의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저기 저 앞에 그가 있는 곳이지만 정인은 선뜻 들어설 수가 없었다. 정인은 용기를 내서 아버지를 핑계 되고 한의원으로 들어섰다. 밥도 먹지 못하고 몇 시간을 시달린 정인의 모습은 몹시 초췌했다. \"아니! 웬일이세요. 아버님은?\" \"저 혼자 왔어요. 식사대접을 하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많이 좋아 지셨다고 아버지가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래요.\" \"그래요, 아주 좋은 소식이군요.\" 준석은 서둘러 퇴근을 하고 정인과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밝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정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어디 몸이 아파요?......\" \"아뇨\" \"아까 들어오는데 안색이 안 좋았어요.\" “무슨 일인지 얘기해 보세요.” “아뇨 할 얘기 없어요.” “어서 얘기해 봐요.” “아니예요. 전 그냥 집에 갈래요.” 정인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마침 퇴근해야하니 제가 집에 모셔다 드릴 게요.“ 준석은 그녀를 태우고 강남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그녀는 내내 창밖만을 내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준석은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거의 다 와 갈 무렵 그녀는 갑자기 그의 손을 잡으며 명랑한 척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드라이브해요. 어디든 막 가고 싶어요.\" “...... 그래요 갑시다.” 준석도 측은해 보이는 그녀를 위해 기분전환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듯 핸들을 굳게 잡고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준석은 정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지금 천안에 갈까요?\" \"이렇게 늦은 시간 에요?“ 그녀는 반문했지만 금새 정정하고 싶었다. 그와 같이 라면 어디든지 갈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 별장이 있어요.\" \"그래요. 구경하고 싶어요.\" 준석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이지만 오늘은 그녀를 위로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차를 경부 고속도로 쪽으로 돌렸다. 고속도로 옆 산중턱에 채 녹지 않은 눈이 달빛에 허옇게 비쳐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강아지 모양도 있고, 우리나라 지도 모양도 있었으며, 힌 드래스 입은 여인의 모습도 있었다. 준석의 눈에 보이는 물체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정인도 그와의 시간이 설레임으로 다가와 그녀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 듯한 그녀의 표정과 행동은 준석으로 하여금 그녀를 더욱더 사랑스럽게 하고 있었다. 서로 살아온 환경과 생활관이 다른 사람끼리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토록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정인은 너무나 놀라울 뿐이었다. '사랑하고 좋은 사람끼리는 지나온 과정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시작부터 잘못된 남편과의 사이를 좁혀 보려고 그 동안 무척 노력을 해 왔지만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감으로 자포자기에 빠져 있었다. 몇 번이고 헤어지려고 하다가도 아이 때문에 참고 살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응어리진 그녀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준석은 그녀의 가슴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쯤에서 풀어 졌으면 하고 바래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냥 좀......\" 그녀는 남편 생각을 하며 쓸쓸히 웃었다. 천안 톨게이트를 나와서 성거 쪽으로 진입했다. 제설작업이 안된 길은 녹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반질반질 해져 달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국도를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마을은 언제봐도 편안함을 주고있었다. 좌측엔 고개를 들어야 하늘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 있고, 우측엔 채 얼지 않은 저수지의 복판이 검푸름으로 보아 꽤나 깊어 보였다. 인적이 없는 잡목이 우거진 S 자 형태의 오솔길, 그 곳을 지날 때면 그는 항시 음산한 기분이 들어 낮에도 무섭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저수지에서 물귀신이 나온 다는 동네 사람들의 허튼 소리가 오늘은 진짜인양 으스스 했다. 차량 한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불구불 휘어진 산 중턱을 지날 때, 서먹한 거리감에 준석은 그녀에게 무서운 얘길 해주었다. \"이 저수지에서 밤마다 처녀 귀신이 나온대요.\" \"그런 얘기해도 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진짠데......\" 순간 길옆에 눈이 덮여 얼어 있는 잡목가지가 차에 '드르륵' 긁히는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진 그녀는 \"어머\" 하며 그녀는 그에게 살짝 기대어 왔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그에게 느껴졌다. \"거봐요. 무섭죠?\" 준석은 그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자스민 향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의 흥분된 설레임으로 준석을 자극하고 있었다. 저수지를 끼고 2 키로 미터 쯤 올라가니 눈 덮인 고목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멋대로 휘어진 늙은 소나무 몇 그루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들을 지나면 그의 별장이 나온다. 가까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개는 분명 '뻥' 이다. '뻥' 준석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네? 뻥이요.\" 정인은 준석의 입에서 새어 나온 소리를 되물었다. \"아 ! 개 이름이에요. 덩치는 큰데 작은 개 한데도 꼬리를 내리는 똥개라 내가 붙여 준 이름이에요.\" \"네- 에, 이름이 재미있네요.\" \"새끼 때부터 별장에서 길러서 인지 약삭빠른 마을 개보다 순진해요, 그래도 난 뻥이를 좋아 해요.\" 뻥이는 준석을 무척 잘 따라 별장 뒷산으로 약초를 캐러 갈 때면 늘 데리고 다니곤 했었다. 그가 온 것을 알기라도 하는 양 뻥이는 계속 짖어 대고 있었다. 뻥이 만큼이나 귀가 밝은 별장지기 아저씨가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댓글 1개

이지연 2016. 04. 02. 오후 07:28

빨 리 12편. 올 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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