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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12편)
김병국 2016. 04. 05. 오후 09:41
4819
김병국 2016. 04. 05. 오후 09:41
4819
\"어서 오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시기 힘드셨지요?\"
철봉으로 엮은 문을 열어 준 별장지기 아저씨는 부시시한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한쪽 옆으로 비켜섰다.
\"별일 없었죠? 방에 불 좀 지펴 주세요.\"
\"예, 예,\" 그는 연신 허리를 굽히고는 별장으로 올라갔다.
작년 겨울엔 눈을 치우지 않아 차를 밀고 당기고 했었는데, 올핸 제설작업이 제대로 된걸 보니 아저씨의 부지런함을 알 것 같았다.
별장지기 아저씨는 교통사고로 온전하지 못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지만 천성이 매우 착해 아버님이 그를 고용했던 것이다.
준석의 아버님은 1.4후퇴때 여동생인 고모와 단 둘이 피난을 나오면서 몇번의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너무나 많은 고생으로 집 없는 설음에 한이 서려 아버지와 고모가 당신들의 생각을 이루어 놓은 곳이다.
가까이 있는 산 계곡에 물이 흐르다 얼어붙은 얼음이 달빛에 반사되어 스산함을 느끼게 했다.
잎이 떨어진 칡넝쿨에 칭칭 감고 올라간 나무 가지 위에 군데군데 쌓인 눈은 달빛에 비쳐져 마치 모자이크 모양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별장지기 아저씨는 이름이 특이했다.
'장막두' 준석은 그를 장 씨라고만 불렀다.
작년 겨울 새로 와서 집안사정을 잘 모르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나무 타는 냄새가 매큼한 향기로 다가왔다.
산기슭을 타고 눈 섞인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코끝이 시렸다.
정인은 옷깃을 여미고 그에게 바짝 다가와 팔짱을 끼었다.
\"많이 춥죠?\"
\"예, 산바람이라서 그런지 춥네요.\"
그는 바람을 피하느라 별장 아래쪽에 있는 장씨의 거처로 들어갔다.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곳이지만 그녀가 떨고 있는 것 같아 잠시 추위를 피해서였다.
한복 입은 여자사진이 있는 달력 한 장이 한해를 마감하듯 한쪽 벽에 걸려 있는 허름한 방으로 들어섰다.
아랫목엔 연기에 찌든 이불이 깔려 있고, 심심해서 패를 띠다 만 화투장을 섞어 놓은 군용 담요는 웃목에 놓여 있었다.
홀아비 냄새와 담배 쩔은 냄새, 거기에 나무 탄 냄새가 혼합되어 방안은 묘한 냄새로 코를 찔렀다.
도시에서 살다 이런 시골 방에 오면 무척 참기 어려운 냄새일텐데, 그녀는 잘도 참는 것 같았다.
\"냄새가 나쁘죠?\"
\"아뇨, 옛날 생각이 나네요.\"
\"이리로 발을 좀 넣으세요.\"
준석이 이불을 들추며 발을 집어넣으면 말했다.
묘한 냄새가 더운 공기를 타고 얼굴에 후끈 풍겼다.
서슴없이 발을 넣은 그녀의 발과 그의 발이 맞닿았다.
정인은 그를 처음 만나 눈 웅덩이에서 자기에게 벗어 준 그의 구두를 신을 때 느꼈던 그 따스한 행복감이 다시금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발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30촉 흐릿한 불빛아래서 방안의 냄새와 더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발끼리의 작은 호기심 찬 설렘에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침묵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장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이 따뜻해 졌는데요.\"
준석과 정인은 서로의 마음을 들킬세라 얼른 일어나 족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섰다.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장씨를 어색해 하며 대충 인사를 한 그녀와 그는 나란히 별장으로 향했다.
바로 가면 얼마 되지 않는 곳을 일부러 언덕 밑을 돌아서 갔다.
준석은 장씨 방에서 밴 냄새를 몸에서 날려 보내고도 싶었지만 그보다도 그녀와 같이 오솔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그녀에게 주위 분위기를 설명하고 그녀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두리번거리며 그들은 별장입구로 들어섰다.
키 큰 아름들이 노송(老松) 열댓 그루가 5 백 평쯤 되는 눈 덮인 잔디밭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있었다.
철망과 탱자나무로 된 울타리, 잔디밭 오른쪽에는 통나무 의자를 양쪽으로 하고 널찍한 돌을 얹어 놓은 아궁이가 흐릿한 달빛에 들어나 있었다.
돌을 달구어 고기를 구워 먹곤 했던 곳이다.
\"저 돌 위에다 고기를 구우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준석은 돌 위에서 잘 구워진 고기는 일류 식당에서 먹는 그런 고기 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을 연출한다고 말했다.
\"저도 먹어 보고 싶어요.\"
\"준비를 해 올 걸 그랬지요? 아, 가만있어 봐요 전에 남겨 놓은 고기가 있는지......\"
준석은 아버지와 왔을 때 남겨놓은 고기를 생각해 냈으나 갑자기 얼마 전 교통사고로 변을 당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며시 말 꼬리를 감추었다.
연주와 연지가 왜 자꾸 그럴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지 그는 간난 아이가 도리도리 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지나는 말로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돌로 만든 서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양 옆은 키 큰 화초와 한길 정도 되는 동백나무 숲이 있어 밤에는 제법 움침하고 무섭기까지 한 곳이다.
\"으시시 하네요.\" 그녀가 몸서리치며 준석의 옆으로 밀착시켜와 둘만의 공간에 가벼운 흥분을 느끼게 했다.
별장문을 열고 들어서니 널찍한 마루 천정 한가운데에는 잔잔한 수정유리가 수백 개 달린 샹데리아가 매달려 있었다.
촛불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휘황찬란해 보이는 불빛을 몇단계 줄였다.
왼쪽 벽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는 벽난로가 있고, 온통 나무 색으로 비치는 장식장들이 양옆으로 어색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리 호화롭지 않은 별장이지만 그의 식구들은 상당히 애착을 갖는 곳이다.
벽 한쪽엔 통기타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엔 유럽풍으로 조각이 잘된 고풍스런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코디언도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 가까이 다가서며 “식구들이 음악을 좋아 하시나 봐요?”
그들은 자연스레 벽난로 앞에 앉았다.
'탁' '탁' 소리내며 타오르는 장작 불길의 따스함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금새 나른해졌다.
장미나무진열장 안에 있는 크리스탈 꼬냑잔 두 개를 꺼내 왼손에 들고 꼬냑을 반잔쯤 따라 그녀에게 건네고는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콕' 쏘는 꼬냑은 목으로 넘어가며 몸에 열기를 확 돋우었다.
잘 마시지 않는 양주 한 모금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벽난로불빛에 은은히 발하는 영농한 크리스탈 잔에 빛이 반짝이며
스위트 피풀의 ‘bird of paradise’ 이 30인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숲속에 온 듯 온갖 새소리와 하프소리가 별장거실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흐릿한 벽난로의 불빛만으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그윽했다.
그가 술병을 슬며시 내려놓자 그녀도 잔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하며 와락 끌어안았다.
벽난로 불빛에 포옹한 그들의 모습이 반대쪽 벽에 흐릿하게 그림자로 비쳐졌다.
외딴 산속 별장에서 둘만이 있다는 것이 그들을 본능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정인은 감미로운 음악과 그의 억센 포웅에 눈을 감았다.
준석은 촉촉한 그녀의 입술 위에 가만히 대 보았다.
향긋한 입술이 닿는 순간 전율을 느끼며 흐느적거렸다.
가슴이 쿵당, 몸은 두둥실, 그들은 황홀경에 빠져버렸다.
성적 흥분만은 아닌 듯 성스러운 의식 같은 느낌으로 그들은 얼싸안았다.
신비스럽고 감미로운 그녀의 입술은 아이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촉감에 그는 다시 한 번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약간 벌린 정인의 입술에서 꼬냑 냄새가 향긋하게 새어 나왔다.
준석은 실컷 키스에 취하고 싶었으나 황홀경에 도취된 듯한 정인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적막을 깨고 갑자기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잠잠해졌다.
이따금씩 산짐승이 내려와 돌아다니면 개들이 쫓아다니곤 했으나 오늘은 커다란 짐승이 내려왔는지 더욱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다.
두려움을 타는지 정인은 준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잠시 주춤했던 그들의 열정은 더 강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벽난로 장작불 빛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앞가슴은 그를 더욱더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도톰하고 탄력 있는 두 봉우리, 그는 등 뒤에서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찌릿하게 전기가 오듯 순식간에 성감이 자극되고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흥분에 그들은 푹신한 카페트에 스르르 미끄러져 누우며 살며시 감은 눈은 준석을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옷을 벗기는 것조차 불순하게 생각될 정도로 그들의 행위는 성스러웠다.
벽난로의 장작불은 타다닥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주위는 돌출 된 물체만 보였고, 은은한 장작불 빛은 무드 있는 자연 조명을 연출하고 있었다.
벗겨진 옷은 발아래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으나 화폭처럼 예술성이 있어보였다.
가녀린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숨을 멈추고 싱그런 머릿결과 솜털 하나하나를 더듬듯 움직여 갔다.
그녀도 숨을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장작 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가장 민감한 곳을 스쳤는지, \"아!\" 하는 숨소리에 더욱 강렬해지는 그들의 행위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두 다리를 벌리며 터져 나왔다.
\"아-아\"
다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린 바이브레이션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의 손도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천상에 오른 듯 아름답고 신비스런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선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저를 다 - 가져가세요.\"
그녀는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붉으래한 장작불빛은 그녀의 촉촉한 몸매를 반사시켜 더욱 섹시하게 보였다.
거칠어진 숨소리는 그녀 귓전에서 몰아쉬고 있었다.
갑자기 북소리가 들리는 듯 '둥 둥' 그의 가슴을 마구 두둘이며 흔들어 놓았다.
그는 조이는 듯한 마찰을 느끼며 그녀 속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 아!\"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무방비 상태로 모든 걸 준석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이제 까지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세계를 그에게 안겨 주고 있었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아내에게 죄를 짓고 있는 걸일까?' 그러나 이미 후회 하기는 늦었다.
그러면서도 저절로 움직여지는 준석의 행위는 그녀에게서 계속 신음소리를 나오게 만들고 있었다.
밖에서 또다시 요란하게 개들이 짖어 대고 있었다.
뻥이는 멀리서 지원을 하듯 한번씩 짖어 대고, 새끼들은 모두 합심해서 무엇인가를 공격하는 것 같았다.
개 짖는 소리에 멈칫하는 그녀의 행동에 준석은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멈칫하던 그녀도 그를 끌어당기며 더욱더 강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색다른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의 흥분은 극에 다다른 듯 강한 신음소리에 쑥스러운 몸짓인지도 모르고 숨을 멈추다 몰아쉬기를 반복하며 장작불이 다 타버렸는데도 계속되었다.
'아아-아!' 그녀의 마지막인 듯한 신음처럼 불씨마저 소리 없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녀를 안은 채 촉촉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상큼하면서도 은은한 매혹적인 자스민 향이 코끝에서 맴 돌았다.
그녀의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정사후의 여인에 눈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준석은 정인을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가벼운 여자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요.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녀는 준석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소녀처럼 수줍어했다.
준석은 그녀를 숨 막힐 정도로 더욱 끌어안았다.
\"아! 행복해요.\"
그들은 조금 전 달았던 열기에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서로를 잠재우고 있었다.
누구도 범할 수 없는 한 쌍의 예쁜 원앙(鴛鴦)이 된 채.......
다음날아침 그들은 나무 타는 냄새에 잠에서 깼다.
새벽 창밖엔 아직도 어스름 했다.
새로운 아침이 준석을 싱그럽게 만들고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옆에 누운 아름다운 그녀도 눈을 뜨고 있었다.
뭉클거리는 준석의 마음,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기분, 그녀가 팔을 베고 있어 저림이 왔는데도, 그것이 왜 그리도 흐뭇한지 베품 후의 새로운 느낌을 맛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손으로 빛을 가리듯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정인은 그에게서 새롭고 신비스런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고 온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개운하고 시원한 자유로운 몸짓, 실크 이불이 그의 피부에 스치는 촉감이 매우 상쾌했다.
나무 타는 냄새가 더욱 진한걸보니 장씨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뚜껑을 닫은 것 같았다.
준석은 나무 타는 냄새에 특별한 향수가 있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시골 외가에 갔을 때, 고구마를 아궁이에 구워 껍질을 벗겨 먹여 주시던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형제들 중에 유난히 심성이 곱고 착하다며 준석을 무척 귀여워하시던 외할머니, 가끔 말썽을 부리면 두툼한 쌍가락지 낀 손으로 ‘딱‘소리가 날정도로 머리를 때리시곤 했는데... 지금은 안 계신 외할머니 생각에 준석은 코끝이 시큰했다.
\"우리 일어나 밥해 먹을까요? 내가 해 드릴게요.\"
\"아니예요 제가 해 볼게요.\"
\"저도 밥 잘해요. 식구들과 여기 오면 내가 다 하는 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장씨가 장작 몇개피를 가슴에 안고 한 손에 석유병을 들고 인사를 하며 들어 왔다.
벽난로에 장작을 쌓고 불을 지피는 것이 상당히 숙달되어 보였다.
불길은 금새 타오르고 서늘했던 거실은 다시훈기가 돌았다.
\"김치를 가져 올게요\"
잠시 후 장씨는 빨갛게 잘 익은 총각김치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가 차려 놓은 식탁에 마주 앉아 두 사람은 마치 첫날밤을 치른 신혼부부처럼 상기된 얼굴로 다정하고 오붓하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준석은 그가 좋아하는 산삼차를 끓여 그녀에게 대접했다.
정인은 코끝에 스미는 은은한 향기와 혀끝으로 젖어 드는 산삼의 쌉스름한 맛을 느끼며 준석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정인은 찻잔을 들고 천천히 피아노 앞으로 걸어갔다.
웬지 그의 자상한 마음에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곡으로 화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네모난 갈색 나무의자에 앉아 그에게 눈인사를 보내더니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건반 위에서 물결치듯 능숙한 솜씨로 은파의 변주곡을 치기 시작했다.
그 곡은 평소 준석이 좋아하는 곡이었다.
그녀가 치는 피아노 소리는 별장 안에서 밖으로 청아(淸雅)하게 울려 퍼지고, 그녀의 어깨는 가볍게 일렁이고 있었다.
준석은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그녀의 등뒤로 다가가 어깨 위에 두 손을 가볍게 얹었다.
두 사람은 어느덧 하나가 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은파를 타고 머-언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연주를 끝낸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더니 갑자기 준석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준석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우리 나가서 산책해요. 별장을 좀 돌아보고 싶어요.\"
준석은 정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싸늘하지만 얼굴에 감싸이는 상큼한 바깥 공기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유를 한껏 느끼게 했다.
사랑과 희망이 밀려와 그들은 행복에 젖어 이런 시간이 영원하길 바랬다.
\"너무 아름다워요.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운치있게 꾸미셨어요.\"
어제는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 없었던 별장 뜰 풍경에 그녀는 연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정원은 그림을 잘 그리시는 아버지와 고모의 작품입니다. 두분다 손재주가 대단하시거든요.\"
\"준석씨도 아버님을 닮았나 봐요.\"
\"저는 아버지를 반도 못 따라가요.\"
여기저기 자연석과 사이사이 돋아난 파란 이끼, 말라붙은 파란 풀 난초가 여름 풍경을 짐작케 해 주었다.
맑고 싱그러운 산 공기를 마시며 그녀와 나란히 별장을 한 바퀴 돌았다.
집 주위엔 군데군데 감나무와 살구나무, 벗 나무들 사이사이에 앵두와 줄 장미 등으로 담장을 치듯 심어져 있었다.
\"이 곳에 꽃이 피면 참 아름답겠어요. 살구도 따먹고 앵두 따서 술도 담그고......\"
\"다음에 따 가세요.\"
\"나무가 무성하고 꽃이 필 때 한 번 더 구경 시켜 주세요.\"
\"네, 그럴게요.\"
별장 뒤엔 그가 약초를 캐러 다닐 때 만들어진 오솔길이 산 위로 나있어, 눈이 덮인 채 하얗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참 좋겠어요.\"
\"그럼 여기서 살아요.\"
\"아 뇨, 혼자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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