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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기적)제16편

김병국 2016. 05. 18. 오후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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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두고 온 정인이 생각이 문득 났다. 준석에게 있어 음악과 정인은 늘 같이 붙어 다녔다. 준석은 이곳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나라에서 그녀와 실컷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움을 노래하는 듯한 음악의 느낌은 계속 준석의 귀를 통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들판이 차창 밖으로 펼쳐져 과연 넓은 대륙이란 것을 실감나게 했다. 길옆을 지나는 양털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들, 이상한 손수레에 땔감인 듯 한 나무를 가득 싣고 가는 남자들의 모습은 매우 이국적이었다. 이따금씩 보이는 작은 집들은 초라하고 우중충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공공건물처럼 보이는 현관의 문도 구식 스러워 보였다. 덜덜거리는 택시를 타고 몇 시간을 갔는데도 그들의 시야엔 까마득히 보이는 대지뿐이었다. 거의 비슷한 시골 풍경의 연속은 그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일본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대련시 였다. 일찌감치 상륙한 현대식 일본 백화점이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그런 말을 실감나게 했다. 거리엔 여기저기 쓰레기가 날아 다녔다. 추운 겨울인데도 수많은 자전거는 도시를 가득 메우고 난방을 하기 위해 연탄을 땠는지 도시 온 전체가 일산화탄소로 가득했다. 중국에 있는 자전거는 모두 일 억 대가 넘는다 했다. 도시구경을 채 할 새도 없이 천진으로 배를 타고 가기위해 그들은 항구로 나가야만 했다. 여기 항구는 위해시 보다도 더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어 보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은 한국이나 똑 같아 보였다. 배를 타기위해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밀려있었으나 미스 송이 집어 준 돈 몇 푼에 그들 일행은 쉽게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미스 송은 자랑이라도 하듯 여기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좁은 선실로 들어온 그들은 또 한 번 놀라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무엇인가를 까먹으면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게 그들의 행동은 자유 스로 워 보였다. 남녀노소 누구든 하고 있는 풍경이 똑 같았다. 그들은 모두 삶의 의욕보다 순간순간을 즐기는 민족 같았다. 몇 시간째 좁은 선실 안에서 이상한 냄새와 시끄럽기 짝이 없는 중국 말을 들으며 지루하게 여행을 해야만 했다. 미스 송이 가져온 도시락은 맨밥 위에 기름으로 볶은 야채가 번들거리는 것을 보고 준석은 속이 메슥거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동료들은 배가 고팠는지 잘 먹고 있었다. 미스 송은 병에 든 복숭아 통조림 비슷한 것을 사 왔지만 너무 달아서 준석은 그것도 조금 먹다 말았다. 뱃고동이 울리고 배는 천진 항(港)에 정박했다. 오후 7 시에 천진 항을 빠져 나온 준석 일행은 항구 주변 광장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영하 10 도 쯤 되는 그 추운 콩크리트 광장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 서로들 엉켜 얇은 종이 위에 누워 있는 사람, 흐릿한 가로등 불빛아래에서 기차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며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 등등 그들을 본 준석은 인구 11억을 이끄는 이 나라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할빈으로 가는 기차는 10시에 있어서 그들은 미스 송의 안내로 시내에 나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배도 고팠지만 중국 음식의 본토 맛을 본다는 것이 더 구미를 당기게 했다. 식당에 들어선 그들은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가 빠진 물 컵에 물을 따라 마셔야 했다. 성질 급한 동료 최동규는 \"아니 이건 너무하잖아, 손님에게 물 컵이 이게 뭐야.\" \"이건 보통 이야요. 네기선 물자레 귀해 서리 다들 니렇게 쓰고 있시오.\" 얼굴 예쁜 미스 송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북 사투리는 그녀의 말끔한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었다. 드디어 꿈에 부풀어 있던 중국 본토의 음식이 나왔다. 접시 위에 담긴 번들거리는 음식은 그런 대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서로들 젓가락이 분주히 오갔으나 잠시 후 그들은 그만 그 음식을 모두 뱉어 버려야만 했다. 요즘도 시골집에 가면 있을 빈대의 냄새가 음식마다 났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는 그것이 향채라는 채소인데 이 곳 중국에서는 그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칼국수처럼 생긴 무침이 있어 이름을 물어보니 깐 두부라는 것이다. 당나라 때 주용장이 즐겨 먹었다는 털 두부하며 중들이 먹는 얼음 두부, 훈제 두부, 색 두부, 꽈배기 두부, 꽃 두부 등 수십 종류에 달하는 두부의 종류를 들으며 준석은 오래 전부터 콜레스테롤이 없는 발효 단백질을 섭취하는 지혜를 터득한 그들이 사뭇 존경스러웠다. 음식점을 뒤로 하고 그들은 다시 배고품을 참아야 했다. \"에잇, 중국 본토 음식 참 멋들어지군.\" 말수가 적고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박한구가 투덜대며 말했다. 얼마나 맛이 없으면 한구씨가 저럴까 하며 준석은 웃음이 나왔다. 역 쪽으로 가는 길가에 허름한 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웬 사람들이 저렇게 줄을 서 있죠?” 준석은 미스 송에게 물었다. “아 저기요. 저긴 구불리(狗不理) 만두집이에요.” 줄선 사람들은 중국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을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이라 했다. 배도 고프거니와 얼마나 못생겼는지 궁금도 했다. 준석의 일행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만두라도 먹자며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 가이드의 말을 듣고는 더욱 그 맛에 대해 군침이 흘렀다. 만두 이름은 '구불리 만두' 라 했다. 만두집 주인 남자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너무 못생겨 마흔살이 넘은지 오랜데도 결혼도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구불리라는 사람 구경을 하러 왔다가 만두를 먹어 보고는 그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삽시간에 중국 전역에 소문이 나서 중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장사가 아주 잘되고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 돈도 많이 벌어 이제는 마누라가 3명이나 된다고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 식탁에 놓이자 그들은 서로들 하나씩 집어 들었다. “자 맛을 봅시다.” 그들은 축배의 잔을 들 듯 만두를 높이 들고는 입 속에 넣었다. 물컹 육즙이 입안가득 그들은 오물거리며 그 맛을 음미했다. “음! 과연 소문대로 맛이 있군.” 준석이 말하니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또 하나씩 집어 들었다. 만두 4 인분이 금세 동이 났다. 준석은 이렇게 맛있는 만두를 정인과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느새 만두 하나를 먹으면서도 그녀를 생각하는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그녀를 향한 사랑은 멈추질 않았다. \"어서 들 가자요.\" 미스 송의 사투리가 준석의 귀에 스쳤다. 그런 저런 말을 듣지 않고 먹었으면 그저 그렇다고 했을 만두 맛인데, 말을 듣고 먹으니 그 맛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그들은 추운 대합실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기다리다 할빈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 독립투사인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 대장 이토오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하여 즉사시킨 역사의 현장인 할빈 역, 준석 일행은 주위를 살폈으나 그 역사적인 흔적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 맞춰 나온 방창윤이란 중의원(한의원)을 하는 약재상이 그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 중국엔 통신 시설이 낙후되어있어 전화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라 약속을 하게 되면 몇 시간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방창윤씨 도 3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들 일행은 방창윤을 따라 다시 버스를 타고 오상현으로 들어갔다. 그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200 평 정도 되는 약재 창고에 안내를 했다. 그 곳엔 한국에서 구경도 못했던 진기한 약재들이 즐비했다. 웅담, 사향, 구보(狗寶), 동충하초(冬蟲夏草), 등소평이 먹는다는 불로초(不老草), 그들 일행은 눈을 휘둥 거리며 구경을 하다 가격을 물어보고는 또 한 번 놀랐다. 말 빠른 최동규는 \"아니 약재 값이\" 순간 준석은 최동규의 허리를 쿡, 찔렀다. 눈치 빠른 방창윤, 그로 인해 그들은 10 % 를 더 주고 약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중국에서의 일은 흡족하리만큼 잘 진행되었다. 화물수속을 마치고 한국가는 배를 타러 천진항에 도착했다. 일정보다 빨리 한국에 돌아온 준석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정인을 만나 자스민차를 하나 가득 선물을 했다. 그 후 매일 그녀를 만났고 퇴근 후엔 으레 그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40일 만에 중국에서 들여온 약재가 까다로운 수속을 거쳐 40 피트 콘테이너 두 대로 도착했다. 동료들이 고생하고 노력을 한 결과 그들은 많은 이득을 남기게 되었다. 이렇게 몇 번만 하면 준석이 꿈을 꾸어 오던 한방 종합병원을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영리 병원을 짓는 것이 그의 숙원 사업이었다. 그가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몇 살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났지만 준석이 아주 어릴 적 일이었다. 평안남도 순천 군 신창에서 살다 6.25 전쟁이후 그의 어머니는 삼 남매를 데리고 외할머니 댁으로 다니러 갔다가 1.4 후퇴를 만나 아버지와 떨어져 피난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대포 소리가 여기저기 울리고 대동강에는 얼음 덩어리가 둥둥 떠내려가는 추위인데도 남으로 남으로 그의 가족들은 대동강을 건너야만 했다. 마치 장마철에 온갖 잡동사니가 떠내려가듯 강물은 온통 사람으로 뒤덮였다고 했다. 그런 추위인데도 자유가 있는 남쪽으로 가야만이 살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맹추위에 피부가 갈라지는 통증을 견디며 강을 건넜다. 거의 다 건너와 식구들을 살펴본 그의 어머니는 의당 있어야 할 큰 딸 명자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번건너기 힘든 얼음 강을 또 다시 건너가야만 했다. 물이 가슴쯤 찬 곳에서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는 명자 누나를 발견하고 달려가 끌어안고는 피눈물을 흘리며 데려 왔다는 것이다. 모성애란 그토록 강했다. 그의 가족은 경기도 수원 아래 발안이란 곳에 정착을 했다. 어머니와 삼 남매는 지붕도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 벽도, 바닥도 가마니로 두른 가마니 집에서 살았다. 비가 오면 여기저기 비가 새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칠 동안 서 있어야만 했던 그 시절. 그의 어머니는 다 부서진 사과상자에다 종이를 깔아 놓고 김밥을 둘둘 말아 대여섯 개 얹어 놓고 팔고 계셨다. 처음엔 쌀이 없어 한 두 개로 시작한 김밥이 이만큼 될 때까지, 그의 어머니는 한 계절이 지나도록 무릎관절이 부어오르면서도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철모르는 삼 남매는 그런 엄마 앞에 가서 밥을 달랬다. 그의 엄마는 김밥 하나를 세 쪽으로 썰어 주시면서 돌아앉아 우시는 것 같았다. 형과 누나는 아는지 모르는지 김밥 한쪽씩 들고 달아났지만 준석은 엄마 몰래 자기 몫으로 받아 쥔 김밥 한쪽을 상자 위에 놓고 도망쳤다. 준석은 엄마가 목메어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 도망가, 길모퉁이에 숨어서 울고 계시는 엄마를 훔쳐보곤 했다. 그 시절엔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거나, 남의 집 밥 먹는 모습을 보고 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거리에서 파는 사과장수 앞에는 늘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면 오지 말라며 멀리 쫒아 버리는 무서운 사과장수 아저씨는 늘 쓸쓸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굶주린 아이들은 멀찌감치 서 있다가 손님이 사과를 깎아 흘러내리는 껍질을 보면, 마치 경주를 하듯이 뛰어가 사과 껍질을 받아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위생관념이 없이 먹었던 탓일까? 준석은 무척 심하게 배가 아팠던 때가 있었다. 준석은 배를 움켜잡고 길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 때 그의 어머니는 김밥 뭉치를 종이에 둘둘 말아 앞가슴에 넣은 채 준석을 업고 근처에 있는 한의원으로 달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의 엄마는 의사에게 무릎을 꿇은 채 둘둘마른 김밥을 내밀며 빌고 또 빌었다. 준석은 하늘같은 엄마가 그러는 것이 싫었다. 그는 엄마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나 이제 안 아파 빨리 가.\" 그의 엄마는 정말 안 아프냐고 물었다. 어린 준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도 준석을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우시는 것 같았다. 그 곳을 나온 준석은 집에 와서 내색도 못하고 배를 움켜잡고 통증과 싸워야만 했다. 그 때 그 날 이후 준석은 참을성을 배웠고 어릴 적 그 기억은 다른 어떤 것 보다 더 강하게 그의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 후부터 그는 불우한 사람을 위한 병원을 짓겠다는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그 목표를 위해 돈을 벌 것이라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석은 여느 때와 같이 동네 아이들과 길에서 놀고 있었다. 피난 나온 지 3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하늘의 도움인지 조상의 보살핌인지 우연치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미군을 가득 실은 트럭이 길 한 복판에 서자 아이들은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헬로, 헬로' 나 좀 줘요. 나 좀 줘요. 아이들은 고사리 손을 내밀며 사탕 하나라도 얻으려고 저마다 앞 다툼을 하고 있었다. 제일먼저 뛰어간 준석은 차에 매달리면서 헬로 기브미 초코렛을 외치며 안간힘으로 트럭에 매달려 있었다. 갑자기 차가 떠나는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팔꿈치만 까진 채 아무것도 얻지를 못했다. 아이들은 삽시간에 흩어지고 준석은 길 복판에서 볼에 때국물이 그득한 준석은 상처 난 팔을 들여다보며 다음에 올 미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길을 지나던 아저씨가 '많이 다치진 않았니?' 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준석의 얼굴을 본 아저씨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저씨는 한 참이나 준석의 얼굴을 뜯어보시더니 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 쪼구려 앉았다. \"네 이름이 뭐냐?\" \"준이에요.\" 그 아저씨는 준석에게 미제 드롭프스 사탕을 건네주며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네 집은 어디냐?\" 준석은 무지개 드롭프스 하나를 얼른 까서 입안에 넣고 볼록해진 볼을 오물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마니 집을 가리 켰다. 아저씨는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서 준석이 가리키는 가마니 집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계셨다. 무지개색 드롭프스를 들고 준석은 신이 나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엄마 아저씨가 사탕 줬다.\" 준석은 김밥 몇 줄 놓인 사과 상자 앞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까무잡잡한 손으로 드롭프스 한 개를 떼어 내밀었다. \"자, 엄마 먹어\" 어느새 따라 왔는지 아까 그 아저씨가 준석의 등 뒤에서 물끄러미 보고 계셨다. 그 아저씨를 본 그의 엄마는 너무나 놀란 얼굴로 한동안 멍하니 서 계시더니 고개를 돌려 치마 끝으로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아저씨는 준석을 번쩍 들어 안았다. \"준석이가 많이 컸구나!\" 아저씨는 따가운 수염을 준석의 얼굴에 문지르고 있었지만 준석은 싫지 않았다. \"준석아, 아버지다, 아버지야\" 엄마는 눈물을 닦으시며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응, 그래 내가 네 아버지다. 정말 많이 컸구나!\" 준석은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 품에 안겼다. 그의 아버지는 준석을 안은 채 치마 끝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엄마 손을 잡았다. \"여보 고생이 많구려.\" 그의 엄마는 앞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어깨만 들먹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어디 있겠소. 자 어서 집으로 갑시다.” 잠시 후 그의 엄마가 주섬주섬 김밥을 챙기자 아버지는 준석을 내려놓고 사과 상자를 들고 엄마 뒤를 따라 가마니 집으로 향했다. 긴 햇살에 그림자를 길게 두리우고 두 분은 준석의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준석은 신이 나서 형과 누나를 찾았다. 여기 저기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개울가에서 한쪽 검정 고무신을 벗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뚝방을 올라오는 형을 발견하고, 준석은 달려가 형의 손을 잡아끌었다. 들고 있던 고무신 속에 물이 쏟아지고 작은 물방개 한 마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렸다. \"형, 아저씨 왔다. 아저씨가 아버지다.\" 준석은 형에게 드롭프스 한쪽을 떼어 주며 말했다. \"이것도 아버지가 줬다. 되게 맛있어. 형도 먹어 봐\" 준원인 영문도 모르고 무지개색 드롭프스를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아버지가 어디 왔어?\" 준원인 준석에게 손을 내밀며 또 하나를 달래며 말을 했다. 준석은 종이를 까서 구멍 난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그들 형제는 아버지를 보고 또 보려고 하루 종일 가마니 집을 들락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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