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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제 18편
김병국 2016. 06. 19. 오전 11:19
4872
김병국 2016. 06. 19. 오전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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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그의 말에 금새 순응을 했다.
\"잘 다녀오세요. 대신 연락은 자주 해 주셔야 해요?\"
\"그래 그럴 게, 내일 터미널엔 나오지 말아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히려 그녀가 싫다고 따라 가겠다고 했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것 같았다.
북경에 도착한 그들 일행 중 동료들은 할빈으로 가고 준석은 가이드와 운남성으로 가기 위해 열댓 명밖에 못 타는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비행기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위험스런 비행기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중국 대륙을 하늘에서 구경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기류 때문에 떨어지고 올라가기를 10시간이상 시달렸다.
그 곳엔 약재가 싸고 질 좋은 것이 많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운남성에 도착해 버마 국경지역 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비포장 산길을 5시간동안 아슬아슬 지날 갈 때면 온몸이 저려 올 정도로 긴장을 하다 보니 온몸이 결리고 쑤셨다.
이따금씩 산적이 나온다는 곳, 그래서 버스 안에는 늘 군인이 총을 들고 승객들 보디가드를 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너무 높고 가파른 산을 올라서인지 버스가 엔진에 열을 받아 힌 김을 뿜으며 냉각수를 토해 내고 있었다.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내려 차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방금 지나온 절벽을 내려다 본 준석은 그만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천 길이 되어 보이는 산밑, 바람에 흙이 쓸려 짜르륵 흩뿌려질 때면 자신도 모르게 네발로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몇 시간 뒤 어두워서 도착한 곳은 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만 오락가락 하는 풀내음 나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시골 풍경이었다.
마약과 인신매매가 밀거래된다는 버마와의 외딴 국경 지역에 다다른 준석은 버스의 라이트가 비추고 간 수없이 많은 자갈들이 깔려 있는 돌 강을 보았다.
그 곳엔 그 자갈돌로 지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는 그 집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다.
준석은 그 곳에서 아주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한 산을 왜 넘어오는가를 알 것 만 같았다.
약재를 구하기 위해 그 곳에 갔지만 준석은 그 정보를 듣고부터는 약재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일로 병원을 좀 더 빨리 지을 수 있을 거라고 까지 생각 할 정도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피곤했는데도 밤새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병원을 수십 채를 짓고 허물고 하다가 선잠을 잤다.
아침에 따가운 햇살에 눈을 뜨니 방안가득 푸른색 돌을 비추고 있었다.
\"아! \"
준석은 가슴을 쭈-욱 펴고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의 여행이 분명 피곤했을 텐데도 하루사이에 이토록 개운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준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하루를 잔 그 호박돌로 지은 집은 모두 다 비취(翡翠)였던 것이다.
옥이 몸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옥인 비취가 그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그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다른 돌에다 팔이 아플 정도로 문질렀다.
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약간 들어난 속을 물을 발라 적셔 본 준석은 배추 색 비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취는 맑고 투명한 색갈이 제일 상품이었다.
준석이 들고 있는 돌이 바로 버마산 비취였다.
이런 보석을 저렇게 아무렇게나 방치하다니 참으로 이상했다.
어린아이 머리만한 비취원석을 중국 돈 만 원을 주고 두 덩어리를 샀다.
그 돌은 다른 곳으로 가져 갈 수 없다는 말에도 준석은 그것을 한국에 꼭 가져가야만 했다.
비취를 가공해서 정인이 반지도 해주고 목걸이도 해주고 연주와 연지가 시집갈 때 커다란 덩어리로 간직하게 해주고 싶었다.
약재를 구하러 간 준석은 무거운 돌멩이만 들고 운남성 시내로 나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취를 가지고 나오다 들키면 감옥(監獄)에 간다는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계림산수를 구경하고 가라는 조선족 가이드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놈의 돌은 왜 그리 무거운지 그 넓은 중국을 여행하기에는 도저히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그중 하나는 같이 간 조선족 가이드 친구 에게 맡기고 계림으로 향했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았던 계림산수, 태고적 그 신비로움은 이 지구상에 단 하나 뿐인 천국 같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산봉우리가 각가지 기이한 형태로 수백 봉우리가 강을 굽어보며 서 있었다.
700 리 리강은 그런 산 아래로 구비 구비 흐르며 배에 몸을 실은 준석은 그 사이 사이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라는 싯귀가 저절로 그의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강 바로 옆 산을 올려다보려면 배에 들어 누워야만 산허리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훈풍에 실려 오는 신선한 수풀냄새에 취해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서히 무아지경에 빠져 들어갔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맑고 푸르며 모양 좋은 뭉개구름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이따금씩 태고 적 꽃향기가 불어 올 때면 사랑하는 정인과 이런 곳에서 천년만년 살고 싶었다.
갑자기 뱃사공이 휘파람을 불었다.
커다란 오리처럼 생긴 가마우찌 다섯 마리가 배 주위로 모여들었다.
물질을 하여 잡은 물고기를 목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목을 묶어 놓은 가마우찌들은 잡은 물고기를 배 안에 뱉아 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그들의 식량이며 관광객의 유일한 간식 거리였다.
날이 저물자 핑크 빛 노을이 온 천지를 물들여 놓고 있어 황홀함의 극치를 안겨 주었다.
아름다운 색의 조화에 준석은 가슴이 뭉글거려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강에 비친 그 빛의 현란함을 보면서 준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그 곳을 떠나야만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핑크 빛으로 물들었던 강과 산이 자꾸만 되살아 나 그런 경치를 정인이와 같이 보았더라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싶어 같이 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중국이란 나라는 아직 교통이나 통신시설이 낙후되어 있어 전화가 있는 집들을 찾아내기란 매우 힘들었다.
이리저리 동네를 헤메는데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한 노인이 무순가루를 두서너 주먹 넣고 물동이를 휘휘 젖더니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양손을 쭉 펴고는 휘휘 돌리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준석에게 시선을 주며 준석이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줄 알고 한 그릇을 퍼서 준석에게 내밀었다.
투박한 사기그릇은 이가 빠져 군데군데 시커먼 것을 보고는 준석은 꺼림직해서 마시지 않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가이드는 그 노인에게 물었다.
그 물은 자화수(磁和水)라고 했다.
이곳 중국에는 물이 나빠 오래 전부터 그런 식으로 정화(淨化)해서 먹어 왔다며 수명도 연장이 된다고 했다.
시들어 빠진 화초에 자화수 물을 주면 살아난다는 말에 준석은 그 집에서 하루 묵어 갈 것을 청했다.
할아버진 쾌히 승낙을 했고 준석은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줄기에 힘을 잃고 화분 밑으로 처진 화초에 자화수를 듬뿍 주고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다.
자화수를 준 화초는 줄기를 꼿꼿이 세우고 살아났으나 그냥 물을 준 화초는 그대로 처진 채 있었다.
준석은 그 물이 얼마나 좋은지 그것을 보고나서야 자화수 물을 마셨다.
준석은 밤새워 생각한 결과 자석을 이용한 빗을 만들기로 했다.
중국 문헌에 보면 자석은 그 세기를 잘 조절하면 흰 머리가 검어질 수도 있고 주름살이 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틀 동안이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준석은 온통 그 생각에 몰두 했다.
돌덩어리와 자화수를 만드는 자석(磁石)만 달랑 들고 동료들이 있는 오상현으로 왔다.
그들 일행은 돌덩이를 들고 왔다고 깔깔대고 웃으며 이제는 아주 미쳤다고 놀려댔다.
'웃을 사람은 누군데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생각이 들어 준석은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커다란 그릇에 물을 담아 들고 준석은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자 ,이 물을 마셔 봐요.\"
\"아니 이건 맹물 아닙니까.\"
\"이 물이 육각수 물입니다.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그런 물이에요.\"
\"어떻게 만들었죠?\" 일행은 신기한 듯 준석을 쳐다보며 궁금해 했다.
\"자 보세요. 자석으로 물을 몇 바퀴 휘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준석은 그들에게 자화수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근처 상점에 들렀더니 생명지수라고 쓴 컵이 있었다.
그는 그 컵이 자화수를 만드는 컵이란 걸 알고는 하나 샀다.
웅담과 사향 몇 개를 구한 준석은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정보다 빨리 한국에 돌아왔다.
마중 나와 있던 그녀를 본 준석은 얼마나 반가웠던지 남들이 보던 말던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준석은 차를 타다 말고 우그러진 범퍼와 꾸겨진 본네트에 시선이 멎었다.
\"이게 뭐에요?\"
\"네, 서두르다 그만 ......\"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예, 괜찮아요.\"
\"오늘 그런 거야?\"
\"아무렇지 않아요. 어서 차에 타세요 조심해서 운전할게요\"
정인은 연신 방글거리며 준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석은 그녀의 옷매무새를 살피듯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이상이 없음에 안심한 그는 구겨진 차를 타고 그들이 자주 다녔던 양수리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한강변 플라타너스는 강변도로의 열기를 식혀 주고 한강에 떠있는 유람선은 메마른 사람의 마음을 적셔 주고 있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그들은 행복해 했다.
창틀 없는 창가에 마주 앉아 준석은 가방을 열었다.
\"이게 다, 뭐 에요?\"
\"이건 웅담, 이건 사향.\"
준석은 그녀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웅담과 사향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거 아버님께 복용시켜봐\" 그녀에게 그것들을 선물했다.
\"이거 아주 비싼 거잖아요\" 그녀는 웅담을 이리 저리로 살펴보고 있었다.
\"이 돌멩이는 뭐예요?\"
\"이거? 이건 요술 돌멩이.\"
\"?...\"
\"이건, 비취야 \"
\"비취는 보석이잖아요\"
\"응, 그래, 이돌을 가공하면 비취가 되는 거야,\"
\"비취반지 하나에 몇 백만 원씩 하던데, 이런 돌이 비취가 되다니, 세상엔 모를 것이 너무도 많네요\"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하잖아, 커다란 비취반지 하나 만들어 줄게 .\"
\"정말요. 아이 좋아라.\"
정인은 자기에게 이토록 신경을 써주는 그의 푸근한 사랑을 느끼며 온몸이 기쁨으로 충만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준석에게서 느껴 가고, 정인은 모든 열정을 준석에게 바치고 있었다.
준석은 비취를 구하게 된 동기며 핑크 빛 경치를 그녀에게 신나게 이야기 하고 앞으로의 여러 가지 계획 등을 그녀와 의논했다.
한 달 있다 또 중국에 가야 한다는 말에 그녀는 뾰루퉁 삐지는 것 같았다.
달래 주려다, 그는 그녀의 그러한 행동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만 짖고 있었다.
\"이번엔 같이 갈 거죠? 저도 그런 경치 한번보고 싶어요.\" 그녀는 말을 해 놓고 준석의 표정을 의식하고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미안해요. 제가 또 떼를 쓰는 것 같아요. 사업차 가시는 분께 정말 죄송해요.\"
그녀는 진심으로 준석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정인은 준석이 중국에 갔을 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던가!
하루를 한 달 같이 오매불망(寤寐不忘) 그 만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기다림이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그녀였다.
비록 남편의 괴팍한 술주정과 의처증으로 시달리긴 하지만 그래도 준석을 만날 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러한 일들을 이겨 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준석을 향한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가고 정인에게 준석이 없으면 단 하루도 못살 것 같았다.
그러나 자기가 준석의 앞길을 막아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정인은 힘들게 인내하고 참아야만 했다.
그녀의 사과가 너무나 정중해서 준석은 오히려 몸들 바를 몰랐다.
남자의 길을 막아서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녀의 그러한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대신 다음에 태국으로 여행하기로 해, 이번에도 일정이 바빠서 고생할까 봐 그래\" 준석은 태국 빠다야 해변에 대해서 언젠가 들은 적이 있어 그녀에게 대충 얘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금새 준석의 팔짱을 끼고 애교가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태국에는 꼭 데리고 가요. 네?\"
\"응, 그럴게.\"
그녀는 참으로 재치 있고 귀여운 여자였다.
그녀와의 시간은 항시 그렇듯 애틋하고 행복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의논하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라 한 달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이제 준석도 정인을 배제하고는 그 어떠한 일도 할 수 가없었다.
온통 그녀의 생각에 준석의 생활 리듬은 깨지고 환자들도 잘 돌볼 수 가 없었다.
아이들과 만화영화를 보러 극장을 가자고 약속한 것도, 친구들과의 모임도, 협회에서 회의가 있어도, 그녀의 연락을 받으면 모든 스케줄은 취소되고 말았다.
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준석은 몇 시간째 기다렸는데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전화를 했으나 신호만 가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인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걱정이 되었다.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만가지의 잡생각이 머리를 흔들어 놓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근처 상가에서 담배 한 갑 사가지고 차안으로 들어갔다.
몇 년을 두고 힘들게 끊었던 담배였으나 그는 쉽게 한 모금을 드려마셨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머리가 핑 돌았지만 준석은 연신 담배연기를 빨아 댔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기침이 나고 손은 떨려 왔다.
담배 독에 몽롱해진 준석은 순간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토록 처참하게 한여인에게 매달리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생수 몇 모금 마시고 차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심호흡을 몇 번하고 양팔을 벌려 가슴을 쭉 폈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는 생각은 잠시 그녀를 생각하면 미친 듯이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정신이 몽롱해지기를 반복했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에 가려진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정인이도 저 태양처럼 제발 아무 일 없이 구름 뒤에 숨어 있다 나오길 바랬다.
해가 지면 다시 떠오르는 것을, 오늘 모든 세상이 없어지는 것처럼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뇌세포는 어느새 쇠약해져만 갔다.
많은 왕들이 한 여인에게 빠져 나라를 망친 역사의 뒤안길을 떠 올리며 정신을 차려보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인을 향한 사랑은 그의 정신세계를 몰락시키고 있었다.
노란 옷을 똑같이 입고 손을 잡은 형제인 듯 한 여자아이가 준석의 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린 두 딸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준석은 정인을 향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니 막내이모는 교회에 갔는지 아이들은 퍼즐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빠 왔다.” 연주가 하던 퍼즐을 흩트리며 준석을 반겼다.
“연주야, 연지 데리고 공원 가자.”
준석은 환경을 바꿔보기로 했다.
연주는 흩트러진 퍼즐들을 상자에 담으며 연지에게 말했다.
“연지야 빨리 옷 입어.\" 연주는 언제부턴가 엄마가 했던 것처럼 말투가 변해갔다.
“연주야 ! 엄마도 없는데 연지가 불상하지도 않냐? 너무 심하게 꾸짓지 말아라 ”
준석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작은딸 연지가 측은함에 가슴이 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들과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잔디밭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자고 쭈그려 앉아 풀잎 하나하나를 더듬어 갔다.
준석은 네잎크로버 몇 개를 찾았다.
“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잘 찾는 거야?”
연주가 부러워 말하고는 가까이 다가앉았다.
“연지도 이리와 봐”
준석은 두 딸들에게 네잎 크로버의 형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잎크로버가 있는 곳은 특이한 색을 가지고 있단다. 일반 크로버는 잎 중간쯤에 흰색의 선이 가로로 선명하게 있는데 네잎크로버는 가운데 흰색이 아주 연해서 거의 없는 것처럼 진한 녹색같이 보인단다.”
그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크로바 꽃에 앉으려 하자 연지는 나비를 잡으려 쫓아갔다.
나비는 날아가고 연지는 계속 따라다녔다.
나비는 연지와 술래잡기를 하려는 듯 앉았다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준석은 오늘 아침 정인을 기다리며 조바심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딸들에게 옛날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나비 얘기를 해 주었다.
어릴 적 준석은 아버지와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곤충 채집을 하러간 적이 있었다.
나비가 잡히지 않는 이치를 그 때 그의 아버지는 말해주셨다.
쫒아가면 달아나고 잡으려면 피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란 것을......
나비를 오게 하려면 예쁜 색과 향을 지니면 자연히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어릴 적 준석처럼 아이들은 무관심하게 듣고 있지만 철이 들면 그처럼 사람은 매력을 지녀야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빠, 네잎크로바 찾았어요.\"
연주가 소리치자 연지는 쪼르르 달려갔다.
\"언니, 어디 봐\" 연지는 언니가 정말 찾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연주는 네잎크로바를 들고 준석에게 와 자랑을 했다.
\"아빠, 맞죠? \"
'네잎 크로바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했는데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까?'
연주는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했다.
준석은 큰딸의 그러한 모습이 예뻐 흐뭇한 마음으로 칭찬을 했다.
\"연주는 아빠 말을 잘 알아들어서 찾았구나.\"
\"아빠, 나도 마음이 착하다 뭐.\" 연지가 샘을 내듯이 말했다.
\"그래그래 연지도 착해. 우리 딸들 착하니까 아빠가 짜장면 사줄게\"
준석은 아이들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모는 어디 갔지?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정 많은 연주가 말하자 연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모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좋은가 봐, 맨날 하나님, 하나님......\"
준석은 딸들과 식사를 하고 저녁 늦게 집에 왔는데도 이모는 오지 않았다.
준석은 정인이가 궁금해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무순일이 있었어? 통화가 왜 안됬어?”
댓글 1개
이경옥
2016. 07. 02. 오후 09:50
나비를 오게 하려면 예쁜 색과 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사람도 매력을 지녀야 하는 같은 이치인 것을... 억지로 잡으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주위에 모이게 되는 간단하고 어려운 순리... 소재도 풍부하고 배경도 넓고 경험도 일반사람은 격지 못 할 사례도 다양해서 참 재미있네요 작가 선생님 부지런히 글 올려주세요 재미납니다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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