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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 (지옥에서) 제19편

김병국 2016. 06. 25. 오후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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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병원에 갔었어요. 아버지가 위급해요.\" 정인은 울먹거렸다. \"상태가 어떠신데 자세히 말해봐.\" \"운동하려고 혼자 나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병원에 입원시키고 지금 막 오는 길이에요. 정신이 없어 연락도 못 드리고 미안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그녀의 말에 준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몇 주만 있으면 또 중국에 약재를 구하러 가야 했는데도 그는 정인을 위로하고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출국준비로 바빠서 3 일만에 그녀를 만났는데도 무척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시무룩해진 그녀와 드라이브라도 하고 싶었으나 다음날 중국에 가기 때문에 그녀와 일찍 헤어져야만 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아이들 생각에 제과점에 들러 막내딸 연지가 좋아하는 초코렛 케익을 하나 사고 크고 작은 초를 여러 개 얻었다. 연지는 생일에도 나이와 관계없이 케익에 초를 빽빽히 꽂아 놓고 불켜는 것을 좋아했다. 연지가 대문을 열어 주고는 아빠가 들고 있는 케익을 보더니, \"아빠! 엄마 생일인지 알았구나,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야-신난다.\" 연지는 케익을 받아 들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좋아하는 딸을 보며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목이 메어왔다. '오늘이 경숙이 생일이라니' 그 동안 생일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 세상에 없는 아내지만 정말 아내에게 미안했다. 경숙과 결혼한지도 벌써 15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주가 케잌을 꺼내 큰초 3 개와 작은초 8개를 꽂아놓고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딸들은 아빠 앞에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엄마가 없는 케익 앞에서 엄마의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높여 노래를 했다. 준석도 아내의 눈가에 가늘게 자리 잡은 사진을 드려다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저 세상에서 잘살아요?” 온 식구는 마치 아내가 있는 듯 착각하며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 분주한 소리에 준석은 눈을 떴다. 연지가 가방을 들고 나가다 \"아빠, 이거 중국 가셔서 읽어보세요.\" 하며 아빠의 손안에 작은 쪽지를 쥐어 주고 부끄러운 듯 뛰어나갔다. 딸의 쪽지를 받아 든 준석은 집에서 볼까 하다가 딸의 부탁대로 중국에 가서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갈 때는 무척 고생을 했는데, 한번의 고생으로 이렇듯 수월하게 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역시 경험은 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중국에 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 진 것 같았다. 보따리 장사꾼들이 늘었는지 생활력이 강해 보이는 아낙네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비좁은 선실에 들어와 손가방을 베고 지친 몸을 쉬었다. 몸을 편하게 하고 누우니 정인이와 아이들 병원일 등이 교차해 준석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연지가 준 편지를 기억하고 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편지를 꺼내보았다. '아빠에게 아빠! 나는 아빠가 좋와. 나 이번 월말 고사에서 3 등 했다. 잘했지?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일등 할게. 아빠는 돈 버느라 바빠서 그런데도 언니는 아빠가 밉대. 이번에 중국 갔다 오실 때 내 선물만 사지 말고 언니 선물도 예쁜 것 사 와. 그런데 난 아빠가 불상해 매일혼자 자고 밥도 혼자 먹잖아. 전에는 가끔 놀러도 가고 공원에 산보도 했는데 언니랑 같이 안 간지 오래 됐어. 중국에서 오면 전처럼 언니랑 함께 놀러 갔으면 좋겠다. 엄마사진가지고 같이 가. 내 소원인데 꼭 들어줘? 그럼 아빠, 잘 다녀와. 아빠를 사랑하는 연지 올림' 아직 엄마의 품이 그리울 나인데도 글귀가 제법 어른스러워 졌다. 준석은 베고 있었던 손가방에 물기가 자신이 흘린 눈물이란 걸 부정하고 싶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야할지 남감하기만 했다. 연지의 웃음 띤 얼굴 너머에 시무룩한 경숙의 영혼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정인이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무질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번에 서울가면 아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잠시뿐 또다시 정인에게 온 정신을 빼기고 있었다. 그녀와 멀어질수록 그리움은 증가되고 딸들을 생각하면 정인과의 관계를 멀리해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기우는 그의 마음을 그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준석은 이제 그녀와 떨어져서는 도저히 살수 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저런 생각도 잠시뿐 중국에 도착한 그는 가이드 미스 송을 만나 정해진 일정대로 연길로 갔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길은 거리의 간판이 한글로 쓰여 있어 낯설지가 않았다. 간판 모양이나 집들은 우리나라 시골 마을 같아 보였다. '정인이 집' 이라는 한복집 간판이 눈에 띄어 준석은 순간가슴을 두근거리며 가게 안을 한번 살펴보았다. 먼 이국땅에서 정인이라는 이름을 대하고 보니 준석은 정인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와 기래요. 무순 일이 있습네까?\" \"아, 아닙니다.“ 가이드 미스송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준석은 이 곳 실정을 알아보기 위해 미스 송을 따라 연길 서시장이란 곳으로 갔다. 이따금씩 김일성 뺏지를 단 북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이 되어 다녔다. 옷의 모양으로 보아 구식 스타일이지만 깨끗해 보였다. 북조선의 감시체제를 그들로 하여금 실감케 했다. 항상 적대시했던 그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접하게 되니 기분이 묘했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 는 생각에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평화롭게 남북을 오가며 금강산이나 백두산도 구경하고 싶었다. 재래시장이라 그런지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여기 저기 자판에는 많은 음식과 허접한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준석은 이것저것 선물을 샀다. 약재 파는 곳에서 한국에서는 없는 진기한 동충하초(冬蟲夏草)도 샀다. \"김 선생님, 김 선생님\"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준석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게 누군가! 장호리 아니야.\"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네요.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약재를 구하러.\" 준석은 이 먼 중국 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터라 그가 무척 반가웠다. 준석은 한동안 골동품을 수집한 적이 있었는데, 장호리는 그 때 인사동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장호리는 키가 작고 등이 약간 굽은 사람이었다. 장호리는 가끔 좋은 물건을 준석에게 소개 한 적이 있었다. \"연길시 철남에 좋은 물건이 있는데 한번 구경하시겠어요?\" \"철남? 미스 송 철남이 먼가요?\" \"아 뇨, 택시타면 15분정도 걸려요.\" \"한번 가볼까.\" 그들은 택시를 타고 철남으로 향했다. 허름한 집으로 안내한 장호리는 \"만에 들면 가격은 제가 흥정 할 테니 보시기하세요\" 장호리는 귓속말로 말하고는 어둡고 침침한 나무판자로 울타리를 한 집안으로 들어갔다. 인상이 그리 좋지 않은 주름살 투성이의 중년 남자가 나와 인사를 하곤 방으로 안내 했다. 장호리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폼이 서로들 잘 아는 것 같았다. 여기 저기 놓여 있는 골동품들이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순간 준석은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청자 문매병을 보고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낯선 곳에 우리나라 역사책에 나오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청자와 똑 같을 수 있단 말인가! 흑백 상감으로 되어 있는 그 병을 들어 굽을 보니 틀림없는 고려청자였다. 크기, 색깔, 연대 모두 최상급 같았다. 준석은 꽤나 값이 나가는 고려청자를 보고는 흥분을 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가져 왔단다. ‘아!’ 준석은 외마디 소리를 내며 의아했다. \"북조선에서 가져 왔다고 하지 않나요?\" 미스 송이 거들고 있었다. 준석은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에 오겠습니다, 갑시다.\" \"아...아니 김선생님 왜, 그러세요.\" \"그냥 갑시다.\" 장호리는 준석을 따라 나오면서 귓속말로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북한엔 모조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어 잘못하다간 속을 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장호리는 그 얘기는 낭설이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준석은 이념이 다른 나라와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준석의 단호함에 장호리는 다음에 보자며 연락처를 주고 사라졌다. 그나저나 준석은 정인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미스 송, 여기 전화를 할 때가 없을까요?\" \"덴화를 하실라면 더의 딥으로 가시자우요\" 그녀의 사투리는 낮 설지 않았지만 이해하려면 한 번 더 생각해야만 했다. 준석은 미스 송을 따라 2시간이나 걸리는 그녀 집으로 갔다. 그녀는 페인트칠도 안되 있는 아파트 같은 곳에 살았는데 한국산 가전제품이 즐비하여 그녀가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을 접촉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방에서 나가자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계속 가는데 도대체 전화를 받질 않는다. 그는 몇 번이고 전화를 돌려야만 했다. 한참만에야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싸우는 듯한 목소리들, 정인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지금 아저씨가 아줌마를 막 때려요.\" 남자아이의 겁먹은 듯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어 졌다. 준석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두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들은 준석은 이성을 잃은 듯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씩씩거렸다. 준석은 연달아 전화를 걸었으나 더 이상 통화는 되지 않았다. '정인아 ! 어떻게 해. 나는 여기에 있는데 제발 맞지 말고 빨리 도망이라도 가' 준석은 안절부절 했다. 준석은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었다. 미스 송이 들어 왔다. \"미스 송, 빨리 열차표를 구입해 줘요.\" \"와 기래요?\" \"서울을 가야겠어요.\" “디금은 늦었고 내일 아침 새벽차레 있을 거야요 그런데 녁으로 가려면 차레 없어 가지고 설라무네 그 시간에 도착할 수가 없을 거야요.” 준석은 사업이고 뭐고 머릿속은 온통 정인이 생각으로 꽉 차,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열차를 타야만 했다. “지나다니는 차라도 얻어 타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그들은 인적이 드문 한길로 나왔다. 몇십분에 한 대씩 차가 지나가지만 아무리 정지신호를 보내도 무심한 차는 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지났는지 어느새 해는 지고 날씨는 싸늘했다. 가이드 미스송은 내일 볼일이 있어 같이 못 간다며 냉정하게 집으로 들어 간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 무렵 저만치에서 자동차 불빛이 다가왔다. 준석은 재빠르게 길 쪽으로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육중한 덤프트럭 은 준석이 앞에 멈춰 섰다. 트럭 앞자리에는 세사람이 비좁게 앉아있었고 호로도 씌워지지 않은 짐칸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산더미처럼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기차역까지 간다는 몸짓으로 트럭 운전수는 알아차렸는지 트럭 뒤로 타라는 시늉을 했다. 준석은 트럭 집칸에 올랐다. 무거운 납덩이같은 것이 달려있는 그물이 트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차는 출발했고 싸한 바람은 준석의 몸을 강타하고 덜컹대는 뒷자리를 피해 앞쪽으로 더듬더듬 이동을 했다. 갑자기 날카로운 중국말에 깜작 놀란 준석은 트럭 위엔 이미 다른 몇몇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중국말로 뭐라고 시끄럽게 하고 있었는데 무순 말인지는 모르지만 앞은 자기들 자리고 준석은 뒤로 가라는 뜻으로 알고 준석은 트럭 뒤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씩 상대편에서 오는 자동차의 라이트에 비춰진 앞자리의 중국인들은 5명인데 탄광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얼굴이 모두 검었다. 그들은 마치 새둥지처럼 둥지를 틀고 편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준석도 그들처럼 뒷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아늑하게 바람을 막아주었다. 시골은 다 그렇듯이 길이 울퉁불퉁하지만 이곳 중국은 더 심한 굴곡에 가끔씩 덤브링을 하듯 공중에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피곤했던 눈은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몸이 솟구칠 때 균형을 잡지 않으면 트럭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말을 타듯 허리를 펴고 리듬을 맞춰가며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래도 준석은 곤경에 빠진 정인을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이외의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2시간쯤 갔을까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준석은 그물과 함께 하늘을 나르고 철퍼덕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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