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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 (제 21편)

김병국 2016. 07. 04. 오후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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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정인이가 있지 않은가! 지혜는 그런 것들이 모두 허망한 꿈이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준석이 정인과의 좀 더 따스한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길 비는 마음뿐이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이 자신이기를 바래본적도 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무슨 일이든 얘기 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오빠 같은 관계만이라도 얼마나 행복한 시간 이었던가 ! 그녀는 가끔 오빠에게 하듯 준석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혜는 속마음과는 달리 항상 조심스런 말과 행동으로 준석을 어렵게 대하고 있었다. 무엇이 지혜에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인지? 선을 넘어야 좀 더 발전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준석과 같이 느끼는 차안의 공기는 차창으로 부딪치는 빗소리가 정취를 한 것 돋우고 있었다. 차는 어느새 강남 대치동 근처에 다다랐다. 지혜는 오랜만에 편안하고 포근한 기분에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준석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만 가득했다. 차창엔 빗방울이 부딛쳐 어린아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창 너머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우산을 어렵게 쓰고 지나는 주부들이 하나둘 보였다. 풍경으로 보아 지혜가 살고 있는 대치동아파트에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준석은 정인이를 만날 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지혜는 차창밖 풍경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대치동이 지구 저편에 있었으면......' 지혜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쏟아지는 빗줄기와 빠르게 움직이는 윈도우 부라쉬에 눈을 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준석의 차는 아파트 동을 찾느라 천천히 움직이며 골목골목을 지나갔다. \"여기를 잘 아시나 봐요?\" “응, 언젠가 말했지! 정인이라고, 이 근처에 살고 있어” “어머 ! 그래요?” 준석은 아파트 입구에 바짝 세워 비를 피해 갈수 있도록 지혜를 내려주었다. 그때였다. 정인이가 딸 주연이를 안은 채 우산을 쓰고 저 만치에서 걸어오는 것 같았다. 준석은 지혜를 이곳 까지 되려다 준 것이 정인을 만나러 온 줄을 모르고 있었다. 보고 싶은 정인이를 보고도 왜? 준석은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마치 무순 죄를 지은 사람처럼 정인을 피하고 싶었다. 준석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실감하고 있었다. 준석은 정인이를 못 본 체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정인은 준석을 보고 반가이 다가 왔으나 젊은 여인과 다정히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배웅을 하고 있는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젊은 여자는 누구인가 ? 정인은 온통 그 여인에게 신경을 쓰며 야릇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정인은 갑자기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준석의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정인은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녀의 격한 행동에 준석은 당황한 나머지 순간의 착각을 하고 말았다. 차는 달리고 정인은 쫒아왔다. 어째서 정인과의 관계는 늘 순탄치만 안은 걸까? 인도네시아를 갔을 때도 중국에서도 그녀에게 모든 인생을 걸다보니 주변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져 버렸을까? 준석의 인격으로 보아 지금의 그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정인은 씩씩거리며 차를 향해 달려오다 말고 우두커니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정인이가 격한 행동을 하면 할수록 준석은 정인이 성격에 무순 문제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해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서 지혜와 불상사라도 벌어질 것 같아 무척 당혹스러웠다. ‘아니 ! 내가 왜 정인을 피해야 하는 걸까?’ 백미러에 보이는 정인은 한쪽 구두가 벗겨진 채 처량하게 바라보며 손만 휘휘 저었다. “가지 말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녀의 절규하는 행동은 그의 귓전을 때렸다. 준석은 자신이 미욱하기만 했다. 오해로 가슴 끓이고 있을 정인을 생각하니 자신의 마음이 아파왔다. 무슨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하는 데 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날은 그냥 그렇게 와야만 했다. 사소한,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그들과 관계되는 모든 것이 전부인양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준석에게 항시 애틋하고 행복감을 주고 있었지만 그날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 저편에서 정인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여자 누구예요?\" \"언젠가 말했던 동생처럼 지낸다는 지혜야. 오해하지 마\" \"그런데 왜 도망을 갔어요. 왜?\" 정인은 분을 참지 못했는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예요. 빨리 오세요.\" 그녀의 목소리로 보아 마치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만 같았다. 마음은 아팠지만 그날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날 준석은 정인이 생각으로 밤새 한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준석은 병원 앞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정인을 발견했다. 그날처럼 그녀가 이성을 잃고 있지나 않나 해서 준석은 움찔했으나 그녀의 표정을 보고 안쓰러웠다. 그들은 그날의 일에 대해 얘기를 해야만 했다. 그녀는 말없이 준석을 쏘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도망을 갔어요?\" \"당신과의 일이 지혜에게 어떻게 비칠까 걱정이 돼서 그랬어. 미안해.\" 준석의 얘기를 들은 그녀의 표정은 다소 누그러졌으나 완전히 오해를 푼 것 같지는 않았다. \"난 당신을 믿어요. 그러나 다정히 손 흔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순간 제 자신을 억제 할 수 가 없었어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준석은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으나 어떤 식으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지혜씨를 정식으로 소개 해 줄래요?\" 정인의 뜻하지 않은 말에 준석은 자신도 모르게 그러자고 약속을 했다. 지혜가 그런 자신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으나 정인의 오해를 풀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약속 장소인 한정식 집에서 만났다. 정인은 마치 무슨 선이라도 보는 것처럼 정장을 하고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지혜가 나타나자 정인은 일어서서 그녀를 맞았다. 지혜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며 정인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냈다. 약간 어색한 듯한 분위기는 식사를 하면서부터 오랜 친구사이처럼 정답게 보였다. 굳어져 있던 준석은 그들이 다정히 담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난 후 준석의 차를 탔으나 지혜는 방향이 다르다며 중간에서 내렸다. \"안녕히 가세요.\" 정인은 지혜에게 상냥하게 인사하며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빽미러에 비친 지혜의 뒷모습은 웬지 쓸쓸해 보였다. 지혜가 내리자 정인은 준석의 손을 잡았다. 고마움의 표시일까?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준석에게 가만히 기댔다.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자신의 체면도 불사한 그가 멋지기도 했다. ‘그 여자가 과연 그렇게 했어야 했나. 선생님이 사랑하는 그녀는 어떤 여자일까?’ 지혜는 앞으로도 자기가 선생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꺼이 하리라 마음먹고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지혜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를 했다. 한편 준석은 정인과의 서먹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 내일 바닷가 구경 갈까? \"어디로요?\"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차안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놓았다. \"며칠 전 T V 에서 제부도를 소개했는데 물이 빠지면 바다에 길이 생겨서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갈 수도 있대, 우리 그리로 가자.\" \"네, 그래요. 김밥이랑 과일은 제가 준비할게요.\" 그녀는 밤새 잠을 설쳤을 텐데도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 씀에 속이 깊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가서 사 먹자 힘들 텐데, 회도 먹고 조개도 구워 먹고.\" \"아니예요. 제 손으로 직접 해 드리고 싶어요.\" 차는 어느덧 그녀 집 근처에 멈추었다. 정인의 얼굴은 전보다 조금 창백해 보였다. \"어디 몸이 안 좋은 데가 있어?\" 준석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맥을 짚었다. \"괜찮아요. 내일 놀러 갈 준비해야 해요. 일찍 들어갈게요.\" \"그래, 그럼 들어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예, 그럼 내일 봐요? 조심히 가세요.\" 준석은 잠시 잡은 그녀의 맥에서 이상 징후를 느꼈으나 확실치 않은 진맥이라 좀 더 두고 정밀검사를 해보기로 생각했다. 이튿날 조개를 잡으러 간 그들은 갯벌에서 목욕을 하다시피 했다. 갯벌을 달리다 배를 깔고 미끄럼을 타면 5 미터는 미끄러져 갔다. 누가 멀리 나가나 내기를 해 보지만 준석의 반도 못 미치는 거리인데도 그녀는 끝까지 한번 이겨 보겠다는 집념이 대단했다. 마지막엔 그가 져 주었다. \"일부러 져 주었죠?\" \"아냐 힘이 빠져서 진거야. 대단한데...\" 갯벌에서 레스링을 하며 딩굴었다. 얼굴과 옷 속으로 들어간 머드는 그들의 얼굴에 자연스레 머드팩이 되었다. 그들은 불미스런 지난 일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며칠 후 진도군 가사도에서 진료 봉사를 하고 있던 명진 선배로부터 준석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 반갑지 않은 편지였지만 글 내용 중, 남을 돕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모른다며, 새로운 인생으로 젊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알았다고 그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곳에 한번 시간을 내서 가족끼리 여행을 오면 직접 낚시도 할 수 있고 싱싱한 자연산 회도 실컷 먹을 수 있다며 준석을 유혹했다. 준석은 경숙과 결혼할 당시 명진 선배가 경숙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 했었으나 그 때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옷장 서랍을 열다 경숙이 앞으로 온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명진 선배가 아내인 경숙이를 보고 싶다고 한 내용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 한동안 그렇게 편지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다시 그 자리에 편지를 놔두고 준석은 혼란에 빠졌었다. '경숙이 결혼 전에 고백했던 그 사람이 명진 선배였을까? 명진 선배는 경숙이 교통사고로 숨진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경숙이 죽기 전 까지도 계속 연락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 후 어찌 된 일인지 명진 선배와 1년 동안은 통 소식이 없어 잊고 지내다가 새삼스럽게 편지를 받은 것이다. 경숙이 살아있을 때 집안에서 담배꽁초를 생각하고는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도 같았지만 준석은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담배는 철민이가 피운 것이 분명한데... 철민 과 명진 선배와는 무순 연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세상일을 잊어버리고 식구들을 데리고 오라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준석은 수첩에다 위치와 주소, 배편 등을 자세히 적었다. 한번쯤은 명진 선배와 경숙의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빈 공간에 '경숙과 명진' 이라고 낙서처럼 몇 자를 적었다. '명진 선배, 그가 정말 경숙의 첫 남자란 말인가!' 준석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정리를 하자.' 준석은 경숙의 과거를 묻어 두고 있었지만 명진선배가 아직까지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불쾌감이 몰려왔다. 그들과 모든 인연을 끊고 싶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언제 부터인지 경숙과의 거리감은 명진선배의 편지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때. 담배사건이 또 벌어졌던 것이다. 다음날 오늘은 꼭 경숙과 무엇인가를 얘기해야만 했다. T V를 켜 놓은 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경숙이 말쑥한 차림으로 들어왔다. \"잠시 얘기 좀 하지.\" \"지금 피곤해요.\" \"피곤해도 오늘은 할 얘기가 있어.\" 그는 소파에 앉아 경숙이 앉기를 기다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내일 얘기해요.\" 방으로 들어가는 무책임한 경숙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으나 그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면서 까지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준석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렁 누워 눈을 감았다. 허무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경숙이 떠난다음 생각해보면 모든 불미스런 일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있을수 있는 일들이라고만 생각되었다. 지금은 저 세상에 가고 없는 사람을 또다시 떠올려 무얼하겠냐만은 준석은 아내와의 만족치 못한 부부 생활을 몇번씩이나 후회하고 있었다. 왜? 당시 경숙에게 좀더 신경을 써주지않았는지 자신의 짧은 생각을 후회하고 있었다. 부디 저세상에서 행복하기만을 빌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환자들이 북적였다. 점심때 정인이가 찾아와 같이 한식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화장을 진하게 한 연 회색 투피스를 입은 한 여인이 그들의 옆을 지나다 정인을 향해 다가서더니 아는 체를 했다. \"아니, 정인이 아니니!\" \"응, 요숙이구나.\" \"참, 오랜 만이다.\" \"응,...\" \"실례합니다. 정인이 친구예요.\" 요숙은 정인이가 소개도 안시켰는데 준석에게 인사를 하고는 슬그머니 정인이 옆 의자에 앉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녀가 앉자 준석은 인사를 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아버님이 중풍으로 고생한다고 들었어..\" \"응\" 정인은 요숙에게 무엇인가 들킨 것 같아 어색한 말투로 아버지 치료 때문이라며 준석을 소개했다. \"어머, 그러세요. 마침 잘됐네요. 저 요즘 보약을 지으려 했는데, 어디서 하세요? 명함 한 장 주세요.\" 요숙은 준석을 향해 미소를 보이며 다시 정중히 인사를 하고 명함을 청했다. 준석은 정인을 쳐다보았다. 정인은 약간 불안한 얼굴로 두 사람의 표정을 왕복하고 있었다. 그는 명함을 꺼내 요숙에게 건냈다. 요숙은 명함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근처네요. 내일 당장 찾아뵐게요.\" 요숙은 능숙한 말솜씨로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럼 내일 오겠습니다. 얘, 너는 연락 좀 해라. 동창회도 나오고.\" 요숙은 준석과 정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친구가 쾌활하네.\" \"네, 학교 다닐 때는 응원 단장했어요. 미팅 때는 인기가 최고 였구요. 남자들은 발랄하고 유머 있는 여자를 좋아하나 봐요.\" \"글쎄, 나는 그렇지 않은데.\" \"아마 아직 결혼도 안 했을 거예요.\" \"능력만 되면 혼자 사는 것도 좋잖아!\" \"그래요. 혼자 사는 게 편하지요.\" 정인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다음 날, 정인은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져 준석에게 의논을 하려고 모시고 갔다. \"정인아.\" 오늘따라 유난히 화장을 진하게 한 요숙이가 들어왔다. \"아버님 모시고 왔구나.\" \"응, 넌 약 지으러 왔니?\" \"아버님에게 인사를 드려야지?\" \"잘 몰라보셔......\" \"그래, 그럼 꽤 심하시구나!\" \"얘, 어서 들어가 봐\". 정인은 요숙과 깊은 얘기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요숙은 명품빽을 정인에게 잠시 맡기고 접수를 한 뒤 진찰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세요.\" 준석은 요숙이가 정인의 친구라 조금은 조심스런 마음도 들었다. \"요즘 괜히 밥맛이 없고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약을 좀......\" \"어디 진맥을 해 봅시다.\" 준석은 요숙이 팔을 걷고 전자 진맥기로 진맥했다. 짧은 스커트에 다리를 꼬고 앉은 요숙은 준석에게 다가앉았다. 그녀의 다리는 허벅지 깊은 곳까지 들어나 있었다. 요숙은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책상 위에 턱 올려놓았다. 준석은 촌, 관, 척의 맥에 검지 중지 약지를 살며시 올려놓고 맥을 짚었다. 신 맥이 좀 탁한 것 말고는 정상이었다. \"어디 안 좋은 데라도 있나요?\" 그녀는 생글거리며 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아주 건강해 보여요.\" \"그래도 우리 나이가 들면 보약을 먹어야 되지 않나요?\" \"보약을 드시면 도움은 되죠.\" \"저는 무슨 체질인지 좀 봐 주세요.\" \"소양인(小陽人) 체질 같군요. 신장이 좀 약해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허리가 가끔 아프시죠?\" \"예, 그래요. 어떻게 아세요? \" \"화를 내면 불같고 동작이 빠르시죠? \"네에, 맞아요. 너무 정확하시네요.\" 그녀는 앉아서 두 손을 허리에 갖다 대고 가슴을 쑥 내 밀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준석의 코앞에서 출렁거렸다. 준석은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그녀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요숙은 앉은 채 허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준석에게 말했다. \"가끔씩 허리가 뻐근하고 묵직한데 무슨 운동이 좋을 까요?\" \"글쎄요? 등산을 좀 해보세요. 심폐기능도 좋아지고 허리도 부드러워 질 겁니다.\" \"네 에. 보약은 다 같은가요?\" \"다 같진 않습니다. 신장(腎臟)이 선천적으로 좀 약하신 것 같아요.\" \"잘 좀 지어주세요. 다음에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올게요.\" 요숙은 준석에게 눈웃음을 치며 원장실을 나갔다. 정인이 아버지병실로 찾아간 요숙은 정인이 에게로 다가앉았다. \"정인아, 너 저분 어떻게 알았니? 실력이 굉장하신 것 같애.\" 정인은 핸드빽을 요숙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얘는, 한번보고 어떻게 알아. 나 아버지 몸도 닦아드려야 하니까 어서 가봐라.\" 정인은 요숙에게 준석을 칭찬도 하고 싶었지만 그와의 깊은 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요숙은 정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아냐, 정말 굉장해.\" \"이석중씨\" 간호사가 약을 타 가라고 정인의 아버지를 불렀다. 정인은 준석에게 들어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요숙을 의식하고 약만 받아 들고 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요숙아, 먼저 갈게.\" \"응, 다음에 보자, 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요숙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정인이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그 후 정인은 아버지를 모시고 한의원에 가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곳에 가면 웬지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비오는 어느 날 요숙은 두 명의 친구를 데려왔다고 수선을 떨며 진찰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예, 어서 오세요.\" \"친구들이에요. 진맥 좀 잘 해 주세요. 제가 친구들한테 자랑을 좀 했거든요.\" 요숙은 마치 자기와 준석과 굉장히 친밀한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친구들 앞에서 으시대듯 말했다. 한 여인은 얼굴이 부석부석 해 보였고, 다른 한 여인은 쉽게 피로를 느낀다며 보약을 지으러 왔다고 했다. 준석은 그들을 진맥한 뒤 약을 처방했다. 친구들이 진찰실을 나가자 요숙이 들어왔다. \"정인이 왔었어요?\" \"네, 어제\" \"두 분이 어떻게 아세요\" \"네?\" 요숙의 당돌한 물음에 준석은 정색을 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궁금해서요.\" 요숙은 찔끔한 듯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환자로 알았어요. 왜 궁금하세요?\" \"좋은 친구예요. 남편이 술주정 때문에 고생이 많은 친구에요. 제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게요.\" \"......\" 준석은 그녀의 불순한 의도를 알 것 같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퇴근시간에 요숙이가 한의원에 불쑥 나타났다. 친구들이 좋아졌다고 한 턱 내겠다며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정인이 올 시간이라 잔뜩 기다리고 있던 준석은 홍두깨처럼 나타난 요숙이를 어떻게 따돌릴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요숙의 친구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와 준석을 끌어내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가 한 턱 낼게요. 퇴근 시간이라 괜찮죠?\" \"같이 가세요. 고마워서 그러는데 성의를 봐서라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준석을 떠밀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허 참, 이러지 마세요.\" 준석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성화에 자신도 모르게 따라 나서고 말았다. 그 때 정인이 한의원에 막 들어서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문 뒤로 숨어 버렸다. 정인은 준석을 데리고 나가는 요숙의 행동이 조금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댓글 1개

정승원 2016. 07. 04. 오후 11:03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새 글 올리신 것 보고 반가움에 잠이 멀리 도망갔네요 빗소리들으며 재미난 글 읽을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다음 연재 손 꼽아 기다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세월을 빗겨나 날마다 더 젊어지세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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