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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 제 33편
김병국 2016. 09. 19. 오후 06:21
4075
김병국 2016. 09. 19. 오후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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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그에게 운이 틀린 다며 고치기를 원했다.
그러나 준석은 수정하지 않았다.
준석은 정인이가 병만 난다면 어떤 것도 다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시편을 준석은 예쁜 책을 만들어 그녀의 생일날 주려고 수집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를 읽어 보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참으로 절절했다.
준석은 정인이가 가끔 힘이 생기는 듯하면 간단한 실뜨기나 주사위 놀이와 공기놀이로 손을 움직이게 했다.
정인이 이만한 것도 그와 같이 있다는 안도감에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잠들자 준석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늘 이런 시간은 연구자료를 펴놓고 하루하루 정인의 식사와 행동의 변화를 기록하곤 했었다.
그는 노트를 꺼내 적었다.
오늘은 오두막 주변을 세 번이나 돌았다.
운동 시작한 첫날엔 한번 도는데도 숨이차 하더니 이젠 제법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힘이 생기는지 자꾸 움직이고 싶어 했다.
생식 6개월 만에 복수는 조금 감소한 것 같았다.
통증은 횟수가 뜸해지고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약화 된 것 같았다.
오늘은 산나물과 율무 그리고 잡곡으로 쑨 죽과 생감자를 짓이겨 먹였더니 저녁녘엔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래서 손가락 과자를 하나 더 주었다.
탕약은 될 수 있는 한 연하게 하고 단방 약을 주로 복용시켰다.
식수로는 게르마늄 생수와 인삼과 홍경천을 달인 물, 반천수를 마시게 했다.
그녀가 병자라는 것을 잊어버리도록 그는 어릴 때 들었던 옛날 얘기를 총 동원했다.
몇 번이나 들었을 텐데도 그녀는 재미있어 했다.
준석은 몇 년 전부터 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었지만 이제 그 대상을 가장 사랑하는 정인이로 하고 있다는 것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먹었던 식품이 있는데, 그것은 준석이 만든 손가락 과자였다.
산속 게르마늄 계곡 물로 두 시간 이상 콩을 삶은 다음 축축한 볏짚을 몇 겹으로 깔아 놓고 그 위에 삶은 콩을 펴서 두꺼운 천으로 덮어 숙성을 시킨다.
볏짚에 있는 미생물을 이용한 방법이다. 바실러스균이 끈적거리는 점액을 만들어 낼때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콩을 꺼내어 으깬 다음 산삼과 약초가루를 섞어 손가락처럼 가늘게 빚어 놓고 그늘에서 건조시킨다.
어느 정도 건조되면 다시 햇볕에 바짝 말리는데 그때 알 수 없는 작용으로 빠르게 건조된다. 그것을 간식처럼 그녀에게 매일 먹게 했다.
물론 그도 같이 먹었다. 그녀는 그것을 손가락 과자라고 불렀다.
처음엔 고약한 냄새로 무척 힘들어했지만 요즘은 그런 과자를 즐겨 먹었다.
처음 시작했던 생식은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져 준석이 원했던 첫 번 째 과제는 해결된 것 같았다.
늘어졌던 배는 힘이 생긴 듯 했으며 복진의 느낌도 한결 탄력이 있었다.
그 날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쪽문으로 내다보니 정인이가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무리하면 안돼, 빨리 들어와.\"
\"아침에 일어 날만해요 이젠 제가 밥 할 거예요.\"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자신에 찬 음성이었다.
조금씩은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 해 봐 하지만 절대로 무리하면 안 돼.\"
그렇게 그들은 다정하게 주거니 받거니 밥을 먹었다.
\"어제 먹은 그 약이 좋은 것 같아요. 힘이 나고 의욕이 막 생겼어요.\"
준석은 수저를 들다 말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 준석이 절벽에서 캤던 약초를 캐왔다.
어느 시골농부는 처마 밑에 장작을 가지러니 쌓인 것을 보면 부자가 된 것 같다는 어느 농부의 말처럼 준석은 약초가 쌓이면 부자가 된 듯 뿌듯해 했다.
보고 또 봐도 그녀 모습은 정말 생기가 나는 듯 했다.
오늘도 내일도 준석은 계속 산을 올랐다.
정인이가 혈색이 좋아진걸 보고난 준석은 힘이 절로 생겼다.
그에게는 한 가지 더 분명한 목적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바위에 자생하는 그 신비스런 약재를 많이많이 구해야만 했다.
얼마를 헤맸는지 오두막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꽤나 높은 산에 오른 것 같았다.
줄기가 굵고 드릅나무 같이 생겼으며 잎사귀는 해당화 같이 생긴 오래된 듯한 이상한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이상하리만치 야릇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순 이유일까?
왜 이리도 행복해 지는 걸까?
혹, 엉성이 할아버지가 말하던 그 약초가..... 그는 뿌리를 캐서 베낭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준석은 얼마나 좋았던지 미친 듯이 내려오다 돌 뿌리와 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며 오두막을 향해 달렸다.
무릎과 팔꿈치가 까졌지만 어찌나 신이 났던지 그는 마치 바보처럼 싱글벙글 거렸다.
이제 정인은 암을 정복하고 건강한 여인으로 아니 사랑스런 여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 이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언덕아래 보이는 갈대밭은 바람결에 파도치듯 넘실거렸다.
준석은 이토록 즐겁고 신이나 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그 약초만 먹으면 정인이가 금방 나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가 부엌에서 약을 다리는 데 그녀가 옆에 앉아 다친 무릎에 약을 발라 주었다.
그녀는 소독약을 든 채 턱을 받치고 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준석의 모습에서 오랜만에 그의 매력인 살인 미소를 보았다.
준석도 턱 바치고 앉아있는 정인을 바라보며 행복해 했다.
핏기 없던 그녀 얼굴에서 좀 더 밝은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약탕기에 약이 자글거리며 끓고, 다른 한쪽엔 새로 캔 이름 모를 나무 뿌리를 다리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앉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몇 달인가 지났다.
정인은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그녀는 이제 제법 사람 티가 아니 여인 티가 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옻나무 잎은 빨갛게 물이 들은 채 떨어져 쌓여있고, 상수리 나뭇잎은 노란 자태를 자랑하며 도토리를 듬뿍 땅에 떨구어 놓았다.
도토리를 주어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내고 물에 담궈 녹말을 내려서 도토리 묵도 쒀 먹었다.
정인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샛노랗던 낙옆송 잎은 땅에 떨어져 쌓여있고 상수리나무는 앙상한 가지위에 아쉬운 듯 몇 개씩 잎을 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초를 캐러 산을 오르다 월동준비 하려고 나온 뱀을 발견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 가지로 그놈을 내리 쳤다.
그녀를 위해선 그놈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비실비실 하는 그놈을 들고 내려와 푹 고아서 정인에게 먹였다.
평소 뱀을 싫어했던 정인에게 엉성이 할아버지가 가져온 닭 국물이라 속이고 먹였다.
그녀는 참으로 오랜만에 육식을 해본 것이다. 정인은 더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준석은 강노인에게 내려가 뱀 잡는 법을 배웠다.
\"뱀이란 놈은 가만히 있으면 움직이지 않다가 이쪽에서 움직이면 움직이니 뱀을 잡을 땐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나무로 그놈의 머리를 꾹 누르고 목을 잡으면 그 다음은 마음대로 해도 돼.\"
\"아, 그래서 땅꾼들은 V자처럼 생긴 도구를 들고 다니는군요.\"
\"또 다른 방법은 닭고기를 큰 항아리에 넣고 그 항아리를 뱀이 잘 다닐 만한 곳에 땅을 파고 묻은 다음 망으로 입구를 봉하고 뱀이 들어갈 구멍만 내 놓으면 뱀이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오지를 못하니까 뱀을 많을 잡을 수가 있지.\"
\"네 에\" 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 노인의 말대로 뱀을 잡아 정인에게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준석은 그 동안 살아오신 강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 졌다.
\"내려 온 길에 청국장 좀 가져가지.\"
강 노인은 윗목에 있는 보자기를 준석 앞에 내 놓았다.
\"네 고마워요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김 선생이 우리 마을에 온 이후로 마을사람들은 건강이 매우 좋아 졌어, 우리가 오히려 고맙지.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김 선생을 좋아하는지 몰라, 참, 색시는 좀 어떤가?\"
\"많이 좋아 졌어요. 요샌 나지막한 산은 같이 다녀요\"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고 했던가!
준석은 나무를 다듬어 끝을 V자로 만들어 뱀 잡을 준비를 끝내고 그 날부터 장화를 신고 뱀을 잡으러 다녔다.
그는 작은 베낭 하나 메고 끝이 잘 다듬어진 긴 나무막대기를 들고 산을 오르니 마치 땅꾼이 된 기분 이었다 .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이상한 풀을 발견하고 그 풀을 손으로 헤치며 살피는데 손등이 벌에 쏘인 듯 따금 해서 보니 독사 한 마리가 스르르 도망가고 있었다.
그놈을 잡고는 좋아라 했지만 그는 이미 손등에 독이 퍼지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 탓일까?
눈이 땡기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뱀에 물린 손은 퉁퉁 붓기 시작했고 통증이 몹시 심했다.
뻘겋게 부은 손을 빨아 댔지만 효과가 없었다.
준석은 정신이 희미해지더니 몸이 생각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옷을 찢어 심장 가까이 묶어 보았지만 한 손으로는 제대로 묶을 수도 없었다.
준석은 앉은걸음으로 계곡으로 가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궈 독을 빼려했다.
단전호흡으로 몸의 흐름을 늦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온몸은 이미 힘이 빠지고 마비가 되기 시작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만 겨우 차리고 있었다.
대충 묶은 찢어진 옷이 그에게 뱀같이 보이는 이상 징후까지 보였다.
준석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눈알은 튀어나올 듯 아파 왔다.
일어설 수조차 없는 준석은 오두막이 있는 곳을 향해 뱀처럼 온몸을 꾸물텅 거렸다.
정인이가 암을 이겨 나가는 것 같으니 이제는 자신이 죽는가 싶어 서글펐다.
준석은 낙엽 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질녘 노을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여 놓았다.
저물어 가는 가을하늘이 저리도 아름답건만......
보금자릴 찾아 날아가고 있는 저 새들......
준석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보는 경치였다.
쓰러져 있는 그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이제 여기서 죽는다 해도 그녀가 병을 고치고 살아만 준다면 준석은 여한이 없었다.
\"정인아--- 정인아---\"
준석은 정인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목소린 나오지 않고 입만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힘내어 불렀다.
\"정인아! 정인아!...... 나, 여기 있어!...... 나 좀 데려가 ......\"
준석은 흐느꼈다.
그의 정신은 희미해지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얼마를 견뎠는지 멀리서 누가 데리러 오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저승사잔가?'
\"사자님! 사자님! 제발 정인이 옆에 데려다 주세요.\"
준석은 점점 더 흐릿해지는 정신을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정인아! 살아야되 그래야 당신이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우리 딸들을 나대신 지켜주지\"
'연주야 ! 연지야 ! 잘 살아야한다. 아줌마 병을 고쳐 주고 집으로 돌아가 너희들에게 잘해 주고 싶었는데...... 연주야! 연지야!......'
준석은 정신이 점점 더 흐릿해지더니 다정한 그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
준석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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