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설화목 (제34편)
김병국 2016. 09. 23. 오후 02:14
4386
김병국 2016. 09. 23. 오후 02:14
4386
한편 정인은 집에서 기다리다 해가 지고 어두워 져도 준석이 오질 않자 아픈 몸을 이끌고 그를 찾아 나섰다.
여자의 몸으로 캄캄한 산길은 무서웠지만 손전등을 비쳐가며 한발 한발 산 속으로 들어갔다.
“어디 계셔요. 어이- 어이-야아--- ” 그녀는 무서움을 떨쳐 보려고 여러가지 소리를 내며 자꾸만 산 속으로 빨려들었다.
하얀 자작나무 밑둥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바람결에 움직이는 나뭇잎 소리에 소름도 끼쳤다.
그럴때마다 그가 무순 일이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도 가도 음침한 나무숲에서 준석을 찾는다는 건 무리인줄 알면서도 정인은 자꾸만 끌려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저만 치 앞에 무엇인가 후다닥 소리에 정인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바람결에 떨어진 상수리에 놀란 야생동물 같았다.
스산한 산바람이 나무 가지를 흔들어 될 때 마다 끈질기게 붙어있던 도토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인기척에 한발 한발 그 곳으로 가슴 조이며 다가갔다.
죽은 듯 누워 있는 준석을 발견하고 그녀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안돼, 안돼. \"
정인은 달려가 그를 붙들고 소리 쳤다.
\"누가 좀 도와줘요? 안돼, 안돼요 제발, 제발 죽지 말아요.\"
그녀의 화급한 소리에 산 짐승이 달아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녀는 준석을 지키기위해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두려움과 싸우며 주먹만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무엇이든 나타나면 돌로 내려칠 자세였다.
순간 정인의 눈에선 살기가 돌았다.
준석이 죽으면 어쩌나! 아니 벌써 죽은 것은 아닐까?
정인은 그의 얼굴에 손정등을 비춰보았다.
“얼굴이 얼굴이”
순간 준석은 정인이 손을 꽉 잡았다.
“나 – 좀 데려가줘”
‘아-악’......”
정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얼굴이 잔뜩 부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 심장은 뛰고 있었다.
정인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안돼, 안돼, 제발 죽지 말아요.“
정신을 가다듬은 정인은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금으며 죽으면 안 된다고 소리치며 준석의 두 팔을 잡고 끌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악물고 다시 잡아 당겼다.
조금 움직이는 듯 했지만 역시 그 자리였다.
그녀는 마을에 내려가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 동안 산 짐승이라도 내려와 그를 해칠 것만 같았다.
정인은 옆에 있는 소나무가지를 꺽어 모았다.
언젠가 처럼 준석이 커다란 돌을 옮길 때 보았던 방법으로 나무위에 얹고는 나무가지를 움켜잡았다.
정인은 입술을 깨물어 가며 온 힘을 다해 다시 끌었다.
조금씩 움직이자 정인은 더욱 힘이 났다.
마침 내리막길이라 한 발작씩, 한 발작씩 끌려 왔다.
속옷 바람이 된 채 그녀는 늘어진 한쪽 어깨가 통증이 심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를 끌었다.
정인은 옷을 갈기갈기 찢어 끈을 만들어 그를 묶고 자신의 허리에 동여맸다.
쉬다가 끌고 쉬다가 끌고 나중엔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오두막까지 끌고 내려왔다.
그러나 오랜 병환으로 약해진 그녀의 어깨는 그만 탈골되고 말았다.
측 늘어진 어깨는 힘을 쓸 수가 없었고 통증까지 시작 됐다.
그녀는 언젠가 준석이 중국에서 기차 여행 도중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렸다는 응급 처치법을 기억해내고 그 방법대로 침으로 손끝과 발끝을 마구 찔러 피를 냈다.
잠시 후에 준석은 꿈틀거렸다.
정인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랫마을로 내려가 도움을 청했다.
강노인과 엉성이 할아버지가 헐레벌떡 달려 왔다.
강 노인이 해독제라며 그의 입을 벌려 약을 먹였다.
엉성이 할아버진 무슨 약초를 닳인 물이라며 뱀에 물린 자리에 발라주고 그 약을 먹이기도 했다.
준석은 정신이 흐릿해 오며 뱀들이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마구 물어뜯고 있다고 느껴서 눈을 뜨려 해도 안 떠지는걸 보면 여긴 분명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인은 준석이 움직이자 그의 눈을 까뒤집으며 소리쳤다.
\"제발, 제발, 죽지 말아요. 당신이 죽으면 안돼요.\"
준석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듯 하더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준석은 검은 가방에서 항 독사 혈청제를 거내어 정인이에게 주사를 놔 달라고 했다.
주사를 맞고 난 준석은 다시 잠이 들었다.
강노인과 엉성이 할아버지는 그가 눈을 뜨고 움직이자 이제 걱정하지 말라며 마을로 내려가셨다.
정인은 준석의 상태를 살피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밤새 죽은 듯이 자고 있던 준석이 아침결에야 눈을 떴다.
그는 정신이 드는 것 같았으나 머리가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정인은 준석을 안고 살았다며 준석의 이마에 마구 마구 뽀뽀를 해댔다.
준석은 이마에 무언가 끈적거려 손으로 문질러 보니 피가 묻어 나왔다.
자신이 이마를 다쳤나 하고 다시 만져 보았으나 그의 이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인은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입을 가리고 있었다.
\"왜 입을 가리고 있어. 또 피 토했어?\"
그는 입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겼다.
\"앗 \" 준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정인의 오른팔은 축 늘어져 있었고 입술이 너덜너덜 찢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준석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어깨가 빠졌어 손에 힘을 빼, 자, 아파도 조금 참아.\" 준석은 아직 회복기라 힘을 쓸 수가 없었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정인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아 아 아얏\"
\"좀 어때? 어깨를 조금 움직여 봐.\"
\"아픈데 좀 괜찮은 것 같아요.\"
준석은 정인이 팔을 묶어주고 침을 놓아주었다.
고열로 인해 머리가 몹시 어지럽고 아파 왔지만, 준석의 눈동자는 번뜩이고 있었다.
“당신이 날 데려왔어?”
\"네, 몸이 약해서 빠졌나 봐요.\"
웃고 있는 정인이를 보며 준석은 그녀가 너무나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 약을 발라 주었다.
두툼하게 반창고를 바른 정인의 모습은 측은해 보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어?\"
‘밥상도 들지 못하고 혼자 다니기도 힘들어했던 그녀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준석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감돌았다.
\"나, 이제 힘이 생겼나 봐요?\" 준석의 행동에 그녀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는 자기가 살았다는 것보다는 그녀가 자기를 끌 만한 힘이 생겼다는 것이 더 기뻤다.
인간의 정신력이란 그토록 강한 것인가!
그렇다 정인이도 스스로를 이기도록 세심한 배려를 더 해주어야 겠다고 준석은 생각했다.
둘은 방에 쓰러지듯 아무렇게나 누웠다.
\"이젠 나도 의사가 다 됐나 봐요. 침으로 사혈을 하고 주사를 놨어요.\"
그녀는 자랑을 하듯 신이나 있었다.
정인의 얼굴에선 병자 같지 않은 활기가 엿 보였다.
\"가만...... 요즘 통증이 없었잖아?\"
\"네, 그래요. 요즘은 통 안 아팠어요.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의 생각에 정인은 요즘 통증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준석은 노트를 꺼내어 보았다.
통증이 없어진지 일주일이나 지났다.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안 그들은 너무나 기뻤다.
그 날 그렇게 부둥켜안고 서로를 바라보고 또 쳐다보며 흥분된 기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 거의 날이 밝아서야 잠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어느 날 밤, 잠결에 누군가가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준석의 귀에 어렴풋이 들렸다.
그는 혹시 정인이가 또 통증이 오지 않았나 하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김 선생, 김 선생.\" 아랫마을에 사는 강 노인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동네에 사는 순덕이 엄마가 다 죽어 간다며 헐떡이고 있었다.
준석은 황급히 침통을 들고 강 노인을 따라 나서니 그녀도 쫓아 왔다.
순덕이네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급체로 인한 위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몇 군데에 침을 놓으니 '휴' 하며 깨어났다.
\"좀 안정을 하고 쉬십시오.\"
\"아유 색시가 예쁘기도 해라.\"
순덕이네는 좀 전의 자기의 아픔도 잊었는지 누워서 정인이 에게 칭찬을 했다.
30촉 불빛에 비친 정인의 얼굴은 창백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두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잡고 오두막으로 오랜만의 나들이를 했다.
그 후 순덕이 어머니 사건은 이웃마을에도 소문이 나 가끔 찾아오는 환자들로 준석의 하루는 더 바빠졌다.
치료비를 받지 않자 그들은 화전으로 손수 지은 감자며 고구마 등을 가져와 자기들의 성의라며 굳이 놓고 가곤 했었다.
그로 인해 방안과 부엌엔 항시 여러 가지 곡물들이 쌓이게 되었다.
김치와 잘 발효된 청국장은 항상 강 노인이 가져왔다.
정인은 \"우리 이러다 잘 자리도 없겠다\" 하며 방끗이 웃었다.
\"조금 더 모이면 강 노인 과 엉성이 할아버지 갖다 주자, 밤에 몰래 말이야.\"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그들은 야릇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예, 그래요. 도깨비처럼요?\"
준석은 맞장구를 치며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정인에게 알리고 있었다.
\"아예 올 크리스마스 땐 선물을 사다 아랫마을에 나눠줘요 네?\"
정인은 신이 나고 흥분이 되었다.
\"그래,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준석도 묘한 흥분에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준석은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한 일인지 지혜를 도울 때부터 알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순박한 시골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설레이고 있었다.
\"야, 신나겠다. 무슨 물건이 좋을 까요?\"
\"나이 드신 분들이니까 소일거리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되지 않을까?\"
두 사람은 신이나 동네 분들에게 줄 선물이 무엇이 좋을까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다.
이젠 제법 생기가 돌아 명랑해진 정인을 보고 흐뭇하고 뿌듯함을 느끼며 준석은 희망찬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겨울이 깊었는지 눈이 많이도 내렸다.
댓글 1개
이 정현
2016. 09. 26. 오전 07:03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글 올려 주셔서... 어느 덧 산골살이도 깊은 겨울을 맞이하네요 두 분의 행복 터트리는 소중한 시간이 길었으면...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