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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 깨어진 꿈

서흥식 2017. 07. 03. 오후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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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 깨어진 꿈
 
 
어제도 좀 늦게 잤다 오래전 읽다가 덮어둔 책을 다 읽었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미토콘드리아 DNA를 더듬어 올라가서 우리의 기원을 알아냈다는데 현대인류는 2만5천년 전에 고향을 떠났던 수백명 아프리카인의 후손이라네 엊그제부터 눈이 좀 진물진물하더니 아침에 깨어서도 그 모양이군 뭐가 좀 불안했어 숙제못한 아이같은 마음이었어 발명을 팔아야 하는데 계속 딴청만 하고 있었거든 이불에 누워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두어 편을 읽었지 <4월의 어느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커피물을 끓이라고 했지
 
멍청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
조용한 일요일 아침
주차장엔 차가 듬성듬성 빠져나갔고
아파트 옆 작은 산, 도덕산에서는
아까시 향이 몰칵몰칵 풍기는데
 
담배 한 모금 흘려내고
커피 한 모금 들이켜고
담배 한 모금 흘려내고
커피 한 모금 들이켜고
 
이럴 수도 있나?
비둘기 한 마리가 난간 끝에 앉은 거야
통통하고 날씬한 녀석이
가슴은 자주빛
목덜미는 푸른빛이 도는 녀석이
1.5미터 오른쪽에 날아와 앉은 거야
 
왜 온 거지?
내가 무섭지도 않나?
 
난간 끝에 라벤더 화분이 있는데
어제부터 꽃이 배시시 터지는데
그것 따먹으러 왔나?
 
라벤더 쪽으로 잠시 앉아 있더니
꽃 향내를 맡는 건지 떨치는 건지
어쩐지 맹해뵈는 고개를
뒤룩뒤룩 울끈불끈 떨어댄다
 
그 녀석 보느라
담배 피울 생각도 잊었는데
이 녀석 뒤뚱뒤뚱 돌아서더니
어라~ 날 빤히 쳐다보네
뭘 어쩌라구~
어떻게 해달란 말이야~
 
이 녀석 맘이 바뀌었는지
우향우를 하는 거야
나랑 나란히 주차장을 내려다보는 방향이지
우린 그렇게
멍청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지
 
사실 가슴이 좀 두근거렸어
단정하고 늘씬한 것이
그리고 좀 맹해보이는 작은 것이
나랑 나란히 있는 거잖아
대학 첫 미팅 때도 그랬어
같이 노는 방법은 몰랐지만
뭔 보물을 얻은 것같이
기껍고 놀라웠거든
 
뭐야 이거~
주춤주춤 다가오네
1미터 앞에서 망설이듯 멈추더니
종종걸음으로 다시 오더라구
내 오른쪽 두 뼘 앞까지 다가왔어
우린 서로 바라보고 있었지
 
커피 잔을 들었어
괜히 커피를 마시고 싶었거든
그 순간
작은 새는 날아갔어
콩알만한 예쁜 똥을 지려놓고 말이야...
 
 
 
2010.5.30.
작은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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